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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l 20.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7

내가 ADHD라구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인지행동치료 후 심리검사를 했다. 심리검사를 하는 임상심리사의 비웃는 태도가 칼날이 되어 마음의 연필을 위태롭게 깎아내려갔다. 그러다 잘못 부러지기라도 하면 평-생 잊지 못할 진상환자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압력 밥솥의 잠금장치같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상담사는 내가 만났던 어떤 정신과 의사나 상담선생님 보다 나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4시간이 넘는 1대 1 심리검사를 받은 적도 처음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두 들은 그는 내 인생을 관통하는 핵심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김태우 님은 전형적인 ADHD입니다." 


"네? ADHD요?" 

나는 ADHD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통제불능 산만한 아이들, 장애인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며 10년 넘게 봐왔던 발달장애인학생들, 직장이었던 공립유치원의 특수학급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였다.


 '그런데 내가? 내가 ADHD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과수석으로 대학을 입학했고 군대 전역 후에는 학업 우수 장학금도 몇 번 받았고 졸업 직전에는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700만 원 상금과 유럽견학도 다녀왔었다. 방학에는 삼성케녹스 디자인 멤버십, 디자인 전문회사 인턴으로 일했던 성실한 대학생이었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를 빼먹지 않는 믿음 좋아 보이는 교회오빠이기도 했다. 공무원이 돼서는 4년 6개월 만에 9급에서 7급으로 초고속 승진도 하고 구청과 주민센터에서 일할 때도 원칙적인 업무처리로 유명했다.  


하지만 의심도 잠시였다. 나의 ADHD 진단은 내가 알지 못했던 중요한 퍼즐조각이었다. 나의 문제 행동의 원인을 알 수 있게 해 준 핵심조각이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 행동은 내 사전에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계획 없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아무 준비 없이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무작정 퇴사 후 사업에 도전하고 바로 폐업했다. 직장에서 휴직하고 생각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연애를 하면 계획 없는 데이트로 언제나 허둥지둥 댔다. 계획력이 약하니 일의 규모를 알 수 없어 생각나는 데로 일을 벌인 후 마무리를 못 짓는다.  2021- 23년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다. 미국변호사 로스쿨을 준비했고  의대를 목표로 수능공부를 했다. 제빵기능사, 제과기능사, 전기기능사를 공부했다. 빵집과 서점창업을 알아봤다. 신학대학원에 관심이 있어 성경고사문제집을 샀다. 심리학에 흥미가 있어 임상심리사 필기문제집을 샀다. 소방설비산업기사 문제집을 샀고 소설, 에세이, 그림책, 이모티콘 작업도 했다. 그중에 성공한 것은 제빵기능사 하나밖에 없다. 이처럼 무계획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계획이 없으니 성취도 없어 패배감에 젖어 잠들고 다음날 똑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언이었다. 핸들이 고장 난 자동차를 몰고 운전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부딪히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범퍼카도 아니면서 멈추지 않으니 결국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망가진 나는 자기 통제를 못하고 특이행동을 했다. 조직생활이 어려워 부서를 계속 이동했다. 배변활동에 문제가 있고 수면시간을 조절하지 못한다.  업무, 과제, 약속, 일정부터 자전거, 카드, 장갑, 목도리, 우산, 선글라스, 옷 같은 물건을 수 없이 잃어버렸다. 혼자 있을 때 외국어 같은 말을 쏟아낸다. 죄책감이 들면 3일 금식을 한다.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결벽증이 있어서 병균들을 통제하려 한다. 오전 5시 30분 새벽예배는 나가는데 직장은 지각한다. 여자친구를 특이하게 의심해 언제나 헤어짐을 당했다. 강박증과 강박성 성격 장애때문에 사회생활 자체를 할 수 없을 지경까지 되었다. 나의 특이한 행동들이 20대 때는 교회나 학교에서 아이스 브레이킹 역할을 해서 친구들은 나를 보고 웃고 재밌어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친구 한 명이 없어 옥상계단에 숨어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데 타인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임상심리사는 나의 ADHD적인 본성과 조직문화, 공직생활, 사회규칙의 충돌로 인해 강박증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고 했다. 강박증 치료를 받고 있는 나에게  ADHD로 인해 강박증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강박증의 근원적인 문제는 ADHD였던 것이다. 왜 그걸 이제야 알게 된 걸까? 대한민국 정신의학과 최고 권위자도, 대학병원 교수도, 상담비용이 수 십 만원 하는 상담사도 내가 ADHD라는 말은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언젠가 엄마에게  태몽을 물어본 것이 생각났다. 엄마가 꿈속에서 너무나도 탐스러운 복숭아 하나를 봤다고 했다. 그런데 반대쪽을 보니 상해 있었다. 이걸 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한쪽이 너무나도 탐스러워 결국 땄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다. 엄마의 태몽처럼 나는 반은 탐스럽고 반은 썩은 복숭아 같다. 좋아하는 일도 힘들면 바로 그만두었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나를 좋아했다가 결국 나를 떠났다. 나의 운명은 결국 그런 걸까? 탐스러워서 땄는데 상한 부분을 보고는 버려버리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버려도 나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나에게는 탐스러운 부분이 반이나 있으니까. 하지만 상한 부분도 내 일부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을 잘나 낼 수 있을까? 샴쌍둥이 분리수술처럼 실패하면 내가 죽어버리진 않을까? 원래 불가능한 건 아닐까? 내 운명은 원래 그런 건데 말이다. 


상담사는 대뇌 전두엽의 문제로 ADHD가 있다고 했고 담당 주치의도 뇌의 어떤 회로가 고장 났다고 말했다. 고장 난 시스템이  과부하가 걸려 위험한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엉망진창이 돼버린 내 마음의 비밀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쥔 것처럼 묘한 자신감도 생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를 분노케 했던 상담사의 비웃음은 ‘내가 너 같은 환자들을 잘 안다.’는 자신감의 미소였던 것 같다. 스텝이 엉망진창 꼬인 체 비틀대던 나는 잠시 멈춰보려고 한다. 심호흡을 하고 나라는 퍼즐을 차분히 살펴본다. 맞지도 않은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 고군분투하다 지쳐 쓰러진 남자가 보인다.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주고 싶다. 


 ‘ADHD로 사느라 고생했어.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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