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희'자가 들어가는 여자들 때문에
내가 주민센터에서 강박적으로 힘들었던 업무 중에 하나는 그놈의 인감 발급이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의 이름에 유난히도 많이 들어가는 그 '희'자 때문이다. 진희, 순희, 영희, 명희, 주희, 재희, 예희, 소희, 성희, 경희, 숙희, 선희, 정희, 지희처럼 대한민국에 수많은 여자들의 이름에 '희'자가 들어간다. 그런데 이 '희'자 한문 두 글자 생김새가 아주 비슷하다. 바로 姬 와 姫 다. 두 글자 모두 여자 '희'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주민센터에서 출생신고를 할 때 한자와 구청에서 가족관계등록을 할 때 바뀌는 경우도 많고 성인이 돼서 신분증을 만들 때 다른 한자가 들어가서 여기저기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중요한 건 인감도장의 한자도 다른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분증에는 姬 이 한자를 쓰고 인감도장은 姫 이 한자를 판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장 파는 사람들과 본인조차도 틀린 사실을 모른다. 아마도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원칙왕자인 나는 미대입시를 준비하며 석고데생을 그리고 구성과 모티브를 하고 미대에 가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공무원이 되었다. 무슨 말이냐면 시각적 관찰력을 특별하게 훈련받았다는 뜻이다. 나는 어느 날 틀린 그림 찾기처럼 민원인들이 갖고 온 인감도장의 한자와 신분증의 한자가 미세하게 다른 것을 예리하게 찾아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다 그냥 대충 살면 되는데.... 나는 사서 고생을 한다. 한번 그런 거에 꽂히면 강박적으로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더 자세하게 주도면밀하게 필사적으로 확인한다.
한자가 틀리면 나는 인감도장을 다시 파오라고 했다. 하지만 말했듯이 대한민국에는 '희'자가 들어간 여자가 아주- 많고 그들의 인감도장 대부분 '희'자 한자가 틀렸다. 하루에도 몇 명씩 그런 여자들이 내게로 왔다. 나는 원칙 강박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다시 파오라고 했다. 설명하기도 짜증이 났다. 한자를 쓰거나 출력해서 일일이 민원인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선생님, 신분증에는 이 '姬'고 인감도장은 이 '姫'니까 인감도장을 다시 파오셔야 합니다."
그럼 정말 100% 여자분들이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며 고개를 갸웃하고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번갈아 보고서야 내 말을 이해했다. 세상에는 착한 여자가 있듯 성깔 있는 여자도 있다.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 들이는 여성분들도 있었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미친 여성분도 있었다.
무조건 인감을 떼 달라는 거다.
"인감 떼 주세요! 인감 떼 달라고요!!!!!"
그 미친 여성분은 월요일 아침 9시부터 와서는 록가수라도 된 것처럼 샤우팅을 해댔다. '컹!', '컹' 무섭게 짖어대는 진돗개처럼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인감을 떼 달라고 하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내가 출력을 해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간적인 기억상실증인 것 같다.
점점 인감증명서를 떼러 오는 여자들이 무서웠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희'자가 들어가지 않은 여자이길!'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며 다가오는 여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ㅇㅇ이이이인가가가가감 ㄸㄸ떼러러러 ㅇㅇ오와ㅆ어요요."
'제기랄- 인감이라니! 그럼 제발 '희'자가 안 들어갔길!' 타짜가 카드 모서리를 살짝 들어 패를 열어보듯 조심스럽게 신분증에 인쇄되어 있는 성명과 막도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두껍고 고급스러운 재질의 인감도장을 확인한다. '희'자가 안 들어갔으면 휴~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눈웃음까지 쳐가며 표정이 밝아진다.
하지만 '희'자가 들어갔고 한자의 차이를 발견하면 얼굴은 다시 잿빛이 된다. 어떤 반응이 올지도 모르는데 또 어떻게 그들을 설득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오고 가슴이 깝깝해진다.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그놈의 '희'자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옆에서 함께 일하는 6급 계장님도 강박적으로 '희'자에 매달리는 나를 보고 답답하셨겠지만 뭐라 할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서류발급 책임은 담당공무원이 100%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뒤가 꽉 막힌 나와 함께 일하기 참으로 힘드셨을 것 같다. 나는 구청에도 전화를 하고 시청에도 전화를 했다. 두 글자가 다르지만 같이 써도 된다는 답변을 받고 싶었지만 두 한자는 명백히 다른 한자였다.
나는 '희'자 들어가는 여자들이 무서웠다. 그런데 여기서 행복했던 사람이 한 명 등장한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주민센터 바로 앞에 있던 도장집 여사장이었다. 요즘 도장집 찾기가 어렵다. 인사동이나 가야 예쁜 도장집들이 있지 동네에서는 특히 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인감증명서를 대신하는 본인확인증명서가 생겨서 더욱 인감도장이 필요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도장집 사장님은 손님들이 꽤 늘었을 것이다. 내가 '희'자의 여인들에게 주민센터 건너편에 도장집이 있으니 인감도장을 다시 파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이 내 말을
수긍하고 인감도장을 새로 파왔다. 그럼 나는 인감도장을 교체해 주고 쿨하게 인감증명서를 발급해 드렸다.
하지만 인감도장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주민센터에서만 교체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인감대장은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 주민센터에 보관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를 가면 인감대장도 나를 따라서 우편으로 이사 가는 동네 주민센터 인감담당자에게 가는 시스템이다.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희'자가 들어간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동네 주민센터로 가야 했다. 서울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지방에라도 살게 된다면, 심지어 제주도나 외국에 있다면 진-짜 서로 마음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나는 원칙 강박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희'자 들어가는 여성분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잠시나마 '희'자 들어간 여성들을 피했던 사실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보내드리고 이름처럼 늘 기쁘고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란다.
희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