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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l 02. 2024

DMZ 군 생활

철책을 따라, 추억을 따라

군대에서 최전방 GOP 철책 근무를 했다. 원래는 강원도 인제군 원통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었는데 철책이 있는 비무장지대로 부대 전체가 이동했다. 5시간 정도 행군을 해서 군사분계선 지역에 도착하니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올 법한 기암절벽이 보이고 낯선 북한 방송이 실제로 귀에 울려 DMZ에 온 게 실감이 났다. DMZ에서 군인은 민정 경찰이라는 명찰을 단다. 비무장지대란 말처럼 무장을 하는 군인이 아닌 경찰 신분으로 경계근무를 선다는 국제 규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에게 실탄과 수류탄이 지급되었다.


실탄이 있는 탄창과 수류탄이 들어있는 봉함된 수류탄 통을 늘 챙겨서 GOP 철책 근무를 선다. 문제는 수류탄 통이었는데 그 통이 봉함되어 있어서 안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아직도 궁금한데 수류탄이 안쪽에 짱짱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아 덜그덕덜그덕 소리가 난다. 걸을 때마다 작은 수류탄 통 안에 수류탄이 덜걱덜걱거리니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은 불안한 게 싫어서 근무할 때 수류탄을 풀어놓고 초소 한쪽에 두었는데 그걸 깜빡하고 막사로 복귀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번 보초들이 수류탄을 발견하고 기겁을 한 적이 기억난다. 그리고 실탄을 지급하니 내무실 생활이 편했다. 그게 무슨 논리냐 생각하겠지만 실탄을 갖고 있는 후임을 누가 함부로 갈굴 수 있겠는가? 실탄이 내무실 평화를 유지시켜줬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다. 



철책 근무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2km 남쪽으로 설치된 철책을 점검하고 지키는 일이다. 철책 중간 중간에 카드가 달려 있는데 한쪽은 빨간색, 한쪽은 흰색으로 색칠되어 있다. 왔다 갔다 하면서 카드를 뒤집는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카드를 뒤집다가 정말 신기한 장면을 봤다. 어떤 생명체가 철책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눈이 동그랗고 너무 귀엽게 생긴 동물이었다. 자세히 보니 새끼 부엉이였다. 새끼 부엉이가 철책에 매달려서 나를 말똥말똥 올려보고 있었다. 푸드득거리며 땅바닥으로 내려앉았는데 녀석을 잡으려다 말았다. 그 깜찍한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DMZ에는 멧돼지도 많다. 특히 잔반을 버리는 곳에서 거대한 멧돼지와 마주한 적이 많은데 짙은 회색의 털이 수북한 야생 멧돼지가 10m 전방에 서 있으면 서로 잠깐 얼음이 된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녀석을 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잔반을 버리고 돌아선다. 날 향해 달려오는 멧돼지의 발길질 소리를 못 들어본 게 행운이었다.


동물들이 짝짓기 시즌이 지나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그 거대한 멧돼지의 새끼들도 본 적이 있다. 멧돼지 새끼들은 갈색에 줄무늬와 점박이가 있는데 정말 귀엽다. 그렇게 앙증맞은 녀석이 뭘 먹길래 덩치가 산만큼 커지는지 신기하다.


최전방에 있다 보면 철책 근무도 서고 DMZ 도로를 보수하기도 하고 훈련도 한다. 작업을 하다 보면 실탄들과 탄피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6.25 전쟁의 잔해들이다. 마치 길거리를 걷다 돈을 주운 것처럼 전방에서 실탄들을 주우면 몰래 챙겨서 숨겨놓는다. 그걸로 반지를 만들어서 여자친구에게 주거나 전방 근무를 기념하는 의미로 보관했는데 실탄 소지는 불법이어서 들키면 징계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무하며 발견한 실탄과 탄피들을 비닐로 포장해서 자신만의 공간에 묻어놓고 숨겨놓았다.


한 번은 폭우로 둑이 무너져서 소초가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우린 막사, 초소, 무기들을 모두 남겨두고 더 높은 부대로 긴급하게 대피했다. 밤이 지나고 비가 그치고 현장에 가보니 철책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폭우때문에 몇 km에 달하는 철책이 무너진 광경을 본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두려운 건 복구 작업이었다. DMZ는 아직도 어마어마한 양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철책이 모두 무너질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으니 매설된 지뢰들이 흩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피해 규모가 커서 다른 부대에서 지원 인력이 왔고 나는 복구 작업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뢰 사고 피해도 없었다.

DMZ에서 6개월 정도 취사병을 할 수 있는 기회 생겼었는데 거의 날마다 막사에 있는 전화로 엄마에게 군 생활을 이야기하고 요리 비법을 전수받았다. 나는 특히 콩나물 무침처럼 무침류가 어려웠다. 다른 건 레시피대로 대충 따라 하면 되는데 무침은 손맛이 필요한지 도무지 맛이 안났다. 손맛의 내공이 없었던 것이다. 레시피도 제대로 보지 않고 요리를 해서 라면도 잘 못 끓였는데 고참들이 내 음식은 늘 고추장 범벅이라고 핀잔을 줬던 게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거의 날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전화를 안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엄마도 자기 생활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들이 전화할 거라는 생각에 전화기 앞을 지켰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제일 좋아했던 게 양동근과 장나라가 나오는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프로라서 날마다 챙겨봤었다. 대단한 엄마는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나를 위해 날마다 '논스톱' 프로그램을 편지에 옮겨서 보내주었다. 정말 거의 날마다였다. 그래서 엄마가 보내준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DMZ 근무는 대규모 훈련이 없고 철책 근무만 서니 생각보다 편했지만 휴가 갈 때가 정말 힘들었다. 5시간을 걸어서 DMZ까지 왔으니 다시 5시간을 걸어서 원통 지역까지 가고 거기서 또 차를 타고 서울로 와야 했다. 한겨울밤에 철책을 따라 눈이 수북이 쌓인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 지역을 5시간 행군한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휴가 갈 때는 A급 군복을 입는데 온통 땀으로 젖었었다. 밤이 깊어 잠을 잤는데 어느 소대에 도착했는데 속옷, 내복, 군복이 모두 젖은 채 막사에 앉아있던 게 기억난다.

휴가가면 제일 하고 싶었던 게 초코바 스니커즈 조각을 인절미 가루에 묻혀서 먹고 싶은 거였다. 군대에서는 단게 엄청나게 먹고 싶다. 사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단 것을 먹을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달달한 간식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리고 설탕 보급을 넉넉하게 해주지 않아 반찬에도 설탕이 적게 들어간다. 사회에서 섭취하는 당분보다 현저하게 적게 먹으니 달콤한게 그렇게 먹고 싶은 거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초코파이가 최고의 선물이 된다. 나는 특히 단걸 많이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스니커즈와 고소한 인절미 가루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비 오는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비 내리는 창밖을 보는 게 로망이 있었다. 특이하게 군대에서는 비가 오면 무조건 작업을 시킨다. 군대 도로는 모두 흙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급로, 배수로가 유실되지 않도록 정비해야한다는 이유다. 비만 오면 나가서 비를 맞으며 작업을 하니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뽀송뽀송한 옷 을 입고 한가하게 여유 부리는 게 로망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초코파이를 한 입 베어 먹으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만끽하지 않는다. 고소한 향기가 나는 인절미 가루를 묻힌 스니커즈를 상상하며 미소짓지도 않는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카페에 앉아 꿈만 같은 행복을 만끽하지도 않는다. 몇 시간 힘든 행군을 하며 가족을 만나기 위해 휴가를 가지도 않는다.


그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을 뿐이며 2+1 과자를 고르며 뱃살을 내려다볼 뿐이다. 같은 집에 사는 부모님과도 하루에 한두 마디도 안 할 때가 많다. 몸은 더 편해졌지만 웃음은 사라지고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지만 즐겁지가 않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여유로운데 더 고단하다. 왜 그럴까. 이젠 초코파이 하나에 행복해하지 못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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