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디 이상 안 하려고 했는데

중등과의 대화

by 햇님이반짝


하교한 중1과 단 둘이 있게 된 휴무날이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벌써부터 떨린다. 흐흐흐.


딸: 어머니, 도서관 언제 가?(존대인 듯 아니다)

나: 좀 있다 다섯 시쯤 갈 건데. 저번에 빌린 거 반납할 거니까 이왕 빌려온 거 마저 보던가


본인이 빌려달라는 건 거의 다 보았단다. 그리고 보지 못한 나머지 한 권은 다음에 빌려오면 그때 본단다. (1차 띠로리)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분명 한 시간 뒤에 도서관을 갈터인데 아예 안 본다는 소리도 아니고 눈앞에 손 만 뻗으면 닿을 도서를 다음에 빌려오면 본단다. (이거 이해할 어머님들 계신가요?) 그럴 수도 있지. 있지만 설득해 보자. 이럴 때일수록 숨 한번 고르고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버럭 하면 끝이다.


나: 이왕 빌려왔는데 다음에 또 언제 빌릴지 모르겠네. 아직 여유 있으니 지금 천천히 보는 게 어때?


정~~ 말 다행히 기적적(?)으로 순수히 책을 든다. 이게 뭐라고 고마운 마음까지 드나. 그리고 5분 지났을까. 세상 조용하다. 엎드려 볼 때부터 예상했다. 이젠 크게 놀랍지도 않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보는데 잔다. (하하하). 박수 한번 쳤다. 절대 본인은 잠을 잔 게 아니라며 시치미를 뚝 뗀다. 어련하시겠어요.



감사하게도 다 읽은 건지 만 건지 30분 뒤 책을 내려는다. 그러곤 따 도서관에 언제 가냐며 빨리 가라고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2차 띠로리) 이제는 다른 책을 빌려오라고 재촉한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생각도 못했다. 또 빌려오라 할지는. 늘은 어린이열람실을 들리지 않을 거라 여유롭게 갔다 온다고 말했다. 예전엔 아이들 책 한 권이라도 더 보게 해 주려고 어깨 무거워도 악착같이 빌려왔다. 어느 순간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겨우 볼까 말까 한 책 힘들게 빌려오기 싫었다.(다음에 또 대여할 거면서) 이날은 그다.




다섯 시에 칼같이 나가지 못한 게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그 시간조차도 용납 못하듯 빨리 다녀오라고 독촉한다. 이럴 때만 철두철미한 척 깐깐하게 구는지. 가든 말든 날 좀 그냥 내버려 지. 내가 왜 집에 있으면서 이런 수모를(?) 겪는지 모르겠다. 아차 싶었다. 맨날 당하면서 또 당하는 것 같다. 먼저 똑 부러지게 대처하지 못 나를 원망해본다.


그렇게 한바탕 독촉 끝에 중등은 텝으로 글이란 걸 본다. 또 조용하다. 어깨가 들숨 날숨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보니 한잠이 들었다. 그래 독서만 하면 그렇게 수면가루가 뿌려지는구나. 이런 삐딱서니 엄마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해 볼게.(속으로만 생각해 절대 지켜!)


이 정도면 딸의 안티팬으로서 다음 글감을 내심 기다게 된.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처하는 중이라고 자부해 본다. 이렇게 또 중등과의 짧은 일을 박제한다.






토요일 저녁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음료수를 먹고 싶어 하는 두 딸에게 제로사이다가 있다며 꺼내 먹으라고 했다. 첫째는 하필이면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유리잔에 사이다를 부으면서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더 부었을까 봐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것으로 끝나면 애교다. 얼음 하나를 넣어도 본인컵에 더 많이 넣으려고 마구 때려 넣는다. 둘째는 얼마 남지 않은 얼음을 보며 세상 억울한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거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하...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하기엔 속은 부글부글 둘 다 얼음이고 머고 다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꾹꾹 눌러 담았다. 옆에 와서 또 뭔가 못마땅한 큰아이의 얼굴을 보며 요 근래 딸아이와 있었던 일이 모조리 생각나 남편에게 말했다.



나: 오빠 난 까마귀고기를 먹었나 봐. 돌아서면 까먹어. 첫째랑 세 마디 이상 안 하려고 했는데 그동안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먼저 계속 말을 건다? 그리고 아차하고 또 상처받고


남편: 가족이라 어쩔 수 없다. 딸인데 어떻게 모른척하노. 부모가 그런 거다.



뭐지 이 남자. 이럴 땐 꼭 세상 모든 걸 통달한 듯하다. 남편의 굵고 짧은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수긍되는 듯하다. 그렇구나. 부모는 그런 거구나. 가끔 이렇게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말의 의미가 깊게 박힌다.



우리 엄마도 많이 참았겠지?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