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세상이 검정으로 물들면 꼭 엄마인 내가 먼저 누워야 한다. 두 딸은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 눕는다. 아직도 큰방에 네 명이 함께 잔다. 몇 달 전 이사를 왔다. 아이들 방에 버젓이 침대를 들여줬건만 에어컨은 없다. 여름의 끝자락까지 그냥 물러날 리 없는 더위에 하나로 똘똘 뭉쳐 잘 수밖에 없었다. 여유롭게 자기엔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자리배치가 중요하다. 창문아래로 딸 둘 사이 아빠가 자리를 꽤 찬다. 그러고 싶어서 눕는 게 아니라 둘이 붙으면 세상 속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니 중간역할인 셈이다. 에어컨바람이 직선으로 내리꽂는 명당자리다. 그 바람이 싫은 나는 에어컨 바로 아래 즉 세명의 발아래 옆으로 눕는다. 여기가 내 딴에는 최고의 명당이다. 아무도 내 손에 닿이지 않는다.
중1인 큰 딸이 기어이 아빠 곁으로 딱 달라붙는다. 아무리 어여쁜 자식이지만 매일 안아줄 순 없다. 더우니 붙지 말라는 아빠는 베개를 챙겨 들고 굳이 또 내 옆으로 다가온다. 복에 겨운 줄 알아~ 다 큰 딸이 언제까지 아빠 좋다며 붙어있을 줄 아냐며 핀잔을 주었다. 이대로 잠이 들기 아쉬운지 아니면 이 시간 엄마 아빠가 붙어있는걸 못 보겠다는 건지 엄빠의 중간을 파고드려는 찰나 장난기 발동한 우리는 일부러 못 들어오게 서로를 더 꼭 껴안았다. 이에 질세라 집요한 딸의 승리로 이내 아빠는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앞엔 나 만한 큰 딸이 내 품에 꼭 안겨있다.
그렇게 한바탕 자리쟁탈전을 펼친 후 잠이 드려는데 눈앞의 큰아이 얼굴이 순간 어릴 적 아기 때의 모습으로 비치는 게 아닌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울컥함이 일어났다. 그때는 눈만 마주쳐도 물고 빨던 아이였는데. 요즘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네가 변한 건지. 너랑 나 사이에 달라진 건 지나간 시간뿐인데 그동안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 깊이가 다름을 느낀다. 너에 대한 내 마음이 사실 좀 변한걸 엄마인 내가 느껴지는 게 싫다. 너도 그걸 느꼈나. 내가 너무 티를 냈나. 그래서 동생을 더 못살게 구는 건가. 너의 말 한마디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있었다. 왜냐하면 동생에게 말하는 투가 소름 돋게 나랑 똑 닮아 더 미워 보인 건지도. 너에게서 내가 보인다.
곤히 잠들어 보이는 너의 얼굴에 이미 침범벅이로 도배를 시켜도 모자랄 텐데 선 듯 다가가지 못함을 감지했다. 예전 기억을 거슬러 용기를 내 다가가 볼에 입맞춤을 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의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예쁜 내 아기. 있는 그대로의 딸로 예뻐하려 노력하지 않고 칭찬해주지 못한 게 이내 마음에 걸린다. 그걸 알면서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니. 잘한 점보다 날 선 말 한마디가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모든 걸 수용하기엔 좁디좁은 내 속을 원망해 본다. 요즘 엄마는 너의 행실을 글로 옮기기 분주하다. 이렇게라도 너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초등 때부터 엄마가 먼저 준비물 하나 챙겨주지 못해도 알아서 잘 넣어가는 아이. 중등이 되어 더 이른 등교시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는 아이. 학원시간은 누구보다 철저한 아이다.
책은 좀 읽자 해도 숙제하라고는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엄마. 자기 것을 안 챙기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느껴보길 바라는 엄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을 엄마는 무관심을 가장한(진짜일 수도) 나름 강인한 교육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너는 나를 원망할지도.
이렇게 칭찬받아 마땅한데 분명 너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호르몬의 습격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며 믿고 싶다. 일부러 그런 모난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창과 방패처럼 혹은 서로가 창이 되어 공격만 해서는 지금 우리 위태할지도 모르겠다. 너를 위해 기꺼이 방패만을 장착해야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동생의 말 한마디에 꼬투리를 잡으며 못 잡아 안 달란 아이 같다. 본인이 어질러놓은 것마저도 제자리에 놔두질 않고 머 하나 가져달라고 시키기라도 한다면 왜 나만 시키냐는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너를 어떡해야 할지. 너만 아는 정답이 있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엔 이런 상전으로 있는 꼴을 그냥 볼 수만은 없다. 미안했다가 또 분노가 치솟았다가 하는 한결같지 못하는 마음이 크다.
엄마도 사춘기 딸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니 우리 가끔은 서로 이해하며 때론 격하고도 치열하게 싸우면서 지금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 보자. 그러기엔 이제 시작이다. 너의 뒤를 바짝 쫓는 동생을 상대할 힘은 좀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