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한마디에 집을 나와버렸다

by 햇님이반짝


공휴일인 오늘까지 남편과 아이들은 내리 4일을 쉬고 있다. 어제 아이들과 시내나들이를 한 남편이 고마웠다가 오늘은 또 웬일인지 얄밉게까지 느껴진다. 왜 그런지는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유치하고도 뽕짝 같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4시까지 일하고 온 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남은 오후를 여유 있게 만끽하고 싶었다.

집에 오니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고 (퇴근 전까지 숙제와 독서를(?) 했단다) 거실엔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나의 짐을(책과 커피 블루투스키보드.. 폰) 꾸려 안방으로 들어왔다. 작은 선풍기한대로 꺼이꺼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니 누가 들어가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왜 아무도 없는 더운 방에 혼자 청승맞게 앉아있나 싶었다. 한 시간 뒤 다시 거실로 나왔다. 평소 자주 앉던 6인용 거실테이블 위에는 첫째 아이의 수학문제집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옆으로 치우려고 하는 찰나 짜증 섞인 말투로 '왜 나와가지고'


머지 싸울까. 반나절 넘게 힘들게 일하고 온건 나인데 좀 앉아 쉬려고 하니 고작 듣는다는 소리가. 순간 왠지 모를 서러움과 배신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를 위로해 준답시고 어머니가 이 집안의 기둥인데(?) 그런 말하면 안 되지.

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 변호를 해주었습니다만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데요.

더 이상 이 기분으로 집에 있다간 더 좋은 소리 안 나오겠다 싶었다. 작은 복수로 괜히 너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둥 모진 말을 딸에게 내뱉은 후 나와버렸다. 원래 밖으로 나올 핑계를 찾고 있었던 사람처럼 얼른 작은 가방에 이어폰과 지갑, 휴대폰, 먹던 커피까지 야무지게 챙겨 나왔다. 도서관에 갈 생각으로 책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아뿔싸 오늘 공휴일이라 휴관이네. 어디 가지..



이런 바보 등신 한참을 그냥 막 걷다 보니 그제야 속 좁게 행동한 나 자신이 미워 보인다. 그냥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인데 머가 그렇게 못마땅했던 건지. 오늘 일 나간게 잘못된 건지 방학이 문제인 건지 오늘까지 내리 4일이나 쉰 남편이 부러워서. 아니다. 그 아무것도 문제 될 건 없다. 내 마음의 문제지.


몇 달 전에도 딸의 수행평가일로 내달렸던 적이 있는데 이번엔 집을 나와버렸네. 이래나 저래나 나를 가만 내버려두질 않는다. 이번엔 쌍방과실이니 아니 먼저 선방 날렸잖아. 그래도 어른인 내가 현명하게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딸의 말 한마디에 감정적으로 대했던 나 자신을 원망해 본다. 넓고 편하게 숙제하고 싶었겠지. 딸은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거다. 글로 풀면 속이 시원해지는 거 맞는 거지? 속 좁은 엄마로 남을지도 아님 배려 없는 딸을 이른건지.




그 와중에 남편이 톡을 보낸다.

오는 길에 꽈배기 좀 사 오라고...

저 집 나온 건데요. 그렇다. 누구보다 잘 알겠지. 걸으러 나왔다. 나온 김에 만보채우고 에라 모르겠다. 또 그 핑계로 맥주나 사들고 가야겠다. 그렇게 두 시간 만에 집으로 귀가했다.


오늘도 묻는다. 딸 엄마한테 할 말없어?

꽈배기를 뜯으며 영혼 없이 사과를 하는 딸. 머 엄마도 잘한 건 없으니 그렇게 같이 꽈배기를 먹으며 꼬였던 마음도 함께 풀어본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다시 나왔다. 덕분에 엄마는 오늘 이만보를 걸었단다.








사진출처:햇님이반짝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