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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10. 2024

며느리 직장에 나타난 시어머니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앞에 낯이 많이 익은 얼굴이 아른 거린다. 우리 시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서 있다. 서프라이즈인가.

 



머위나물을 가져오셨다. 어차피 우리 집에 줘봤자 안 해 먹을 거 아니까 바로 며느리 직장으로 오신 거다. 락도 없이 우리 집 밤 아홉 시 반에 현관문을 열어도 놀라지 않는데 직장이 대수랴. 전에도 쑥이나 나물 종류를 많이 캔 날은 어김없이 한의원으로 들고 오셨다. 장님도 드리고 점심으로 나눠먹으라고 주신 거다. 실장님이랑 우리 시어머니는 성격이 비슷한 면이 많다. 잠시도 가만히 안 계신다. 오지랖태평양급이다. 말이 많다. 사람을 좋아한다. 정이 많다. 두 분이서 10분만 더 이야기가 오간다면 조금 오버해서 사돈에 팔촌까지 머 하는지 다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주 보지 않아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가움을 표한다.



마침 한 시간 전에 실장님 친구분이 파를 한 움큼 들고 왔었다. 양이 꽤나 많았다. 실장님은 내일 점심으로 먹을 만큼만 놔둔 뒤 직원들에게 나눠줄 파를 일일이 소분하였다. 퇴근할 때 가져가라고 하였다. 잘됐다 싶었다. 타이밍 딱 좋고요. 마침 남편도 퇴근이 늦는다 하여 저녁을 머 해 먹나 하던 찰나였다.

 

어머니, 실장님이 파 주셨는데 이거 들고 우리 집에 가서 파전 좀 구워주세요.


별 걸 다 시킨다. 손 안 대고 저녁 해결할 생각에 어머니에게 얼른 신문지에 돌돌 싸인 파를 고이 안겨드렸다.


집에 사돈 계시나?


아까 둘째랑 통화했는데 안 계신데요.


(어제 우리 집 근처 골목에서 사돈을 만났단다.  골목에 사시던 아저씨가 두 분 어떤 사이냐며 물을 정도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을 들었다.)


혹 떼려고 왔다가 도로 혹 붙여드린 건 아닌지. (머니가 제 발로 오신 겁니다) 파만 덜렁 맡기고 그냥 보내드리기 머쓱하여 이왕 오신 김에 어디 불편한데 있으면 침이라도 맞고 가라고 하였다. 연신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며느리 직장에 불쑥 나타난 시어머니지만 아파서 오신 게 아니라면 언제든지 들려도 상관없을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는 큰방에서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파전을 붙이려니 인덕션 사용이 어려워 둘째를 몇 번이나 불렀다고 한다. 해드려야지. 저녁이 걸린 문제인데. 그래도 할머니에게만큼은 투덜대지 않는 딸이다. 먹기 좋은 크기로 다섯 장의 파전이 구워져 있었다. 시금치와 머위나물도 한번 먹을 만큼 무쳐 놓았다. 머위나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때 아니면 가족들이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가끔 내가 요리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으면 시어머니의 두서없는 방문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며느리는 어머니 덕분에(?) 요리와 점점 더 담을 쌓는다. 음식만 받는 게 아니다. 수시로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도 함께 받는다. 요(리) 똥(손) 엄마인 나는 미래에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 시어머니만큼 해줄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할머니 같은 시어머니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나는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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