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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20. 2024

그래서 시어머니인가 보다


점심을 먹고 보통은 공원을 걷거나 시간이 넉넉지 않을 때는 직장에서 쉰다. 오늘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집에 잠시 들렀다. 요즘 들어 집에 있는 시간이 좋다. 집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매일 쓸고 닦고 꾸미는 것도 아니다. 이 시간이어야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정적이 있다. 커피 한 잔 내려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좋다. 쓰다만 글을 꺼내 끄적인다. 장소를 바꿔서 적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문장이나 뜻밖의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오늘처럼.



남편은 출장 중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다. 음식 사진을 찍어 보냈다. 마침 나도 쉬고 있던 중이라 지금 상황을 보고 했다. 집에 있고 싶다(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겠지. 아도 모르는 척 다른 말로 회피하는 남편이다. 안다. 누가 등 떠밀어 나가라 했나 자발적으로 일한 지 어느덧 8년째다. 이젠 어쩔 수 없다는 표현도 맞다.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하트 이모티콘 아래에 의미심장한 을 남겼다. 나는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남편보고는 열심히 일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우리 서방 일하면서 좋은데 많이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야 해


커피 한 잔을 다 못 마시고 일어나야 했다(양이 많다) 삼십 분이라도 오고 싶었다. 그만큼 집에 있고 싶은 갈망이 컸던 걸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쓰고 싶었던 건지도.






양치질을 하고 있던 중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난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단 한 사람 백 프로 친정엄마인 줄 알았다. 래나 설거지가 없어도 매일 우리 집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얼굴 보고 갈 수 있겠구나 했다. 문을 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어머니였다. 이제는 어머니 얼굴만 봐도 글감확신에 웃음이 다. 언제부터 어머니에게 이렇게 관심이 있었던가 싶다. 사돈 계시면 보고 갈라했더니 내가 있었다며 더 놀라는 건 어머니였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참기름과 총각김치다. 이번엔 내가 더 놀랐다. 며칠 전 우리 집에 들렀을 때 참기름이 없다며 가져와야겠다 하신 건 알았는데 갑자기 총각김치 등장에 눈이 커졌다. 전 날 친정마한테 집에 총각김치 있냐고 전화를 했었다. 저 먹던 중 큰 아이가 그 많은 김치종류 중에 총각김치를 꼬집어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시어머니의 가방에서 나오 것이 아닌가. 어머니와 같은 동에 사는 친구가 총각김치를 주더란다. 냄새를 맡아보니 우리 며느리가 딱 좋아할 맛든 김치라며 챙겨 오신 거다. 이런 게 우연일까 필연일까. 


급하다. 2시까지 다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어머니 저 먼저 가요"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을 나섰다. 먼가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이 상황마저 우습다.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수시로 낮에 오셨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맞이할 수 있었을까?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마음을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됐을까? 반대였다면 아찔할 수도 있겠다. 불만이 쌓 것 같다.


현재 직장을 나가는 상황에서 언제든 오시는 건 부담이 없다. 쓰는 입장에서 어머니의 등장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어머니를 대하는 내 마음이 당당할 수 있어서 편한 거다. 시에 오시기에 바쁘게 청소할 시간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도 된다. 그래도 뭐라 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적다 보니 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다니나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에게 집에 있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조차 움찔해진다.


어머니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한결같이 잘해준다. 남편 혼자 고생시키면 안 될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신경이 나만 쓰일 뿐. 차라리 어머니가 나를 막(?) 대했다면 이런 생각도 안 했을 것 같다. 어머니는 고단수다. 저 멀리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한데 마음쓰인다. 그래서 시어머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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