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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Oct 06. 2024

할머니, 우리 집에 자고 가실래요?


퇴근하고 집 현관문을 열었다. 낯익은 신발이 보인다. '어머니 오셨네' 큰방 문을 열었더니 시어머니가 일일연속극을 보고 계셨다. 

"어머니 오셨어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하는 어머니다. 며칠 전 아무도 없는 집에 음식만 놔두고 가시는 바람에 얼굴은 보지 못해서 오랜만이다.

"어머니, 저녁 드셨어요?" 시어머니는 배가 고프면 먹고 안 고프면 안 드신다. 저녁을 드시고 오셨는지 연속극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계셨다. 억지로 드시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거실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중 연속극이 다 끝났는지 그제야 큰방에서 나오셨다. 며칠 전 꿈에서 큰아들이 나와 갑자기 보고 싶었단다.

"보고 싶으면 오시면 되죠"

고구마줄 반찬통에 들고 오셨는데 나말고는 먹을 사람이 없다. 밀감과 직접 구운 김도 가지고 왔다. 포도는 둘째 손녀가 좋아해서 들고 왔단다. 어머니 가방은 여전히  선물보따리처럼 음식이 자꾸 나온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저렇게 무거운 거 들고 다니시느라 무릎 아프다고 하면 난감하기도 하다. 들고 오지 마라 하면 또 아들집에 올 이 없어질 테고. 



어머니가 들고 오신 음식으로 냉장고가 다시 풍성해졌다. 어머니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우리에게 표한다.

급 꺼내서 찍었지만 더 많다♡


"할머니, 우리 집에 자고 가실래요?"

가끔 이렇게 효녀인 둘째 딸이 아빠와 나 대신 이쁜 말을 한다. 할머니는 얼마나 흡족하실까, 지 어미 마음도 모른 체. 순간 나도 모르게 심쿵했다. 겉과 다른 속의 마음이 요동쳤다. 긍정도 부정의 말도 하지 못했다. 포커페이스로 아무렇지 않은 듯 착함을 유지했다. 하루이틀도 아니다. 자고 가셔도 아무 상관없지만 어머니는 본인의 임무(음식주기, 연속극, 아들 보기, 우리도 보고)가 끝이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가셨다.



어머니는 혼자 계시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봉사를 다니며 요양자격증으로 소소하게 일도 하신다. 절에도 다니시며 잠시도 집에 계시는 날이 드물다. 시동생네와 어머니, 남편과 내가 있는 단톡방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봉사활동 가서 찍은 사진을 전송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밤에 잠을 깊게 못 주무실 때가 많다. 안 그래도 걱정 많은 어머님이 그렇게 다니시지 않으셨다면 걱정보따리를 짊어 메고 사셨을 테다.



아들은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다. 엄마 입장에서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언제 어디서든 들 수 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어머니가 참 부럽다. 내 아들 보고 싶어 보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잠시만 눈을 돌려도 별거라는 일이란 걸 잘 안다. 이건 어머니의 활달하고 스스럼없는 성격이기에 가능하다. 우리 집에 와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그런 말씀하지 않으신다.

무뚝뚝한 며느리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자주 연락은 못 드려도 아들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실 수 있는 편안한 마음으로 오시게 해 드리는 거다. 호강은 못 시켜드려도 마음만큼은 남부럽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머니 성격을 탐구하여 나도 나중에 딸내미 집에 서슴없이 갈 수 있는 장모가 될 수 있기를. 하하; 꿈이 야무지나? 이렇게 생각하니 어머님이 또 대단해 보인다. 그때까지 음식 솜씨가 좋던가, 여유로운 주머니를 가지던가, 지혜로운 엄마가 되던가, 세 가지 중 하나는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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