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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Sep 09. 2024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

일요일 오전 시어머니와 남편, 두 딸과 영천에 있는 만불사에 다녀왔다. 그곳에 시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지 언 19년. 이십 대 반 남편이랑 사귈 때 딱 한번 뵌 적이 있다. 그때 용돈도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건데도 갈 때마다 마음이 꽁했다. 언제 어디서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굳이 시간을 들여 가야 하나 싶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아버님보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생각해서다. 어떤 상황도 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는데 지금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 간과했다.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무심했을지도 모른다.


만불사도 예전에 비해 모습이 많이 바꿨다. 확장공사를 했다. 묘비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빼곡히 줄지어선 묘비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지금 있는 현생시 머물다 가는 곳처럼 느껴진다.


남편이 아버지에게 덤덤하게 인사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내 눈이 빨개진 것을 본 둘 뚫어지게 바라본다. 숨길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면서 에게 말했다.

"죽으면 끝이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했지만 내 말이 와닿기나 할까? 알지만 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말을 에게 전했다.

한 줌의 재가 되기 전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하고 싶었던 일과 하고 싶은 말을 매 순간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는 게 최선이다. 나는 한 번이라도 더 쓰싶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최소한으로 남기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새창을 열었다.




남편은 가끔 김밥을 만든다. 오늘 바로 만든 김밥과 어제저녁에 미리 사둔 밀푀유나 들고 친정에 가기로 했다. 순인 빠는 지난달에 턱에 있는 혹을  술을 받았다.  무렵 기력도 없었지만   어지셨다. 눈에 띄게 살도 빠졌다. 어루만졌던 뱃살도 사라졌다. 한 번은 일어서다가 넘어져 발가락 열두 군데를 꼬매기까지 했다. 꼼짝없이 엄마가 아빠옆에 24시간 붙어있어야 했다.

가져온 밀푀유나베를 바글바글 끓였다. 아빠그릇에 야채와 고기, 국물을 넉넉히 담아드렸다. 엄마는 많이 주면 화낸다고 했다. 딸이 주는 거라 그런지 많다고는 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 드셨다. 본인이 직접 한번 더 떠다 드셨다. 흐뭇했다. 밀푀유나베가 아빠 입맛에 맞는가 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더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애쓴다. 녀가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루면서 맛있는 거 먹을 때 부모님이 생각난다.


내가 설거지라도 하려 하면 엄마는 "내 할 일도 없는데" 며 그대로 놔두라고 한다. 아빠 돌보느라 힘드실 텐데 딸 설거지할까 봐 난리다.

이주 전 엄마집에 왔을 때 나물밥을 맛있게 먹었다. 역시나 오늘도 무생채와 콩나물, 취나물을 만들어 놓으셨다. 준비해 온 음식이 있어 비벼먹지 못했다. 대신 끓여놓은 된장찌개와 나물을 싸가지고 왔다. 역시나 든든하다.  




오전에 다녀온 만불 오후에 들린 친정의 온도차는 확연히 다르다. 세상과 이승을 오가는 기분이다. 여기 있다가도 언제 저기로 갈지 모르는 게 현재다.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얼굴 더 보고 자주 연락드려야 된다는 걸 알지만 나 역시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를 댄다. 나도 세월 가는 게 빠르다고 느끼는데 부모님은 오죽하겠나 싶다. 가까이 살면서도 몇 달씩 걸러볼 때가 많았다. 아빠가 몸이 불편하시니 그제야 더 자주 뵈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한 약을 중단하고 조금씩 생기를 찾는 아빠를 볼 수 있어 마음이 조금 놓인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차 막혀서 갈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가까이 계실 때 따뜻한 온기를 자주 느껴야겠다. 된장찌개와 나물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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