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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r 14. 2024

집에 과일이 하나도 없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저녁을 먹고 나서 남편과 나, 중2, 초6 딸과 거실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내가 금주선언을 한 뒤로 술 마실 사람도 없는데 오징어안주를 종류별로 주문한 남편을 원망하며 잘근잘근 씹던 중이었다. 여덟 시 삼십 분 느닷없이 현관문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나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할머니다" 큰아이가 현관문 쪽으로 갔다. 웬일로 늦은 시간에 방문하셨다. 시이모가게에서 저녁드라마까지 본방사수하고 오시는 길이었다.






집에 과일이 하나도 없데


낮에 이미 한차례 들리셨던 모양이다. 몇 번이나 과일이 없다며 되뇌신다. 졸지에 과일도 안 사다 놓는 집이 돼버렸다. 냉장고에 과일하나 없던 게 마음에 걸리어 다 늦은 저녁 돼서 다시 오신 거다. 어제 방울토마토 사놓았던 걸 하루 만에 해치웠으니 그게 눈에 보일 리가 없다. 오늘 마침 똑 떨어졌다며 설명을 하여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 같다. 어머니의 속상한 마음과 달리 답답한 게 하나도 없는 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버린다. 그렇다고 일부러 냉장고 서랍을 과일로 채워 넣을 생각도 없다.

 


두툼한 검은 봉지와 어머니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백팩을 오늘도 매고 오셨다. 사과 두 개와 귤 하나 비타오백 다섯 병이 연이어 나온다. 검은 봉지 안에선 딸기 두통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왔다. 지금 당장 두통을  먹어치울 기세로 나서는 아이들이다. 한통만 바로 먹고 나머지 하나는 내일 아침에 기로 했다. 배는 부르지 않겠지만 간편하고 깔끔하게 아침줄 생각에 부담은 줄었다.



눈뜨자마자 과일 달라는 둘째와 실컷 깎아놨더니 아침에 과일은 안 먹는다는 첫째. 주면 주는 대로 먹었으면 좋겠지만 언제부턴가 자기주장이 칼 같은 큰아이에게 내 맘대로 하지 못한다. 과일을 준비하는 사이 첫째는 이미 요플래를 흡입하고 있었다. 밥숟가락으로 두 번 뜨면 없을 양을 아침으로 먹고 간단다. 과일에 요플래 쏟아부어놓을 걸 한발 늦어버렸다. 예쁘게 세팅해 놓은 과일하나 먹어보라며 건네보아도 본척만척 쌩하게 지나가는 게 바깥의 찬바람이 거실 안까지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과일 한쪽보다 평화로운 아침과 우리 사이가 더 소중하기에 두 번 권하지도 않았다. 아니 한번 더 들이댔다가는 나만 또 상처받을 거 알기에.(그래도 아침엔 금사과인데 미련 가득)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에게 살갑지 않은 딸이자 며느리다. 큰딸을 보고 있자니 어제의 시어머니 마음이 나와 같았을까. 어머니는 왜 그렇게 과일에 연연하셨을까. 아들 생각해서? 몸에 좋은데 안 챙겨서? 하나라도 더 주려는 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자의 상황은 다르다.



시어머니가 주고 간 사과와 딸기 덕에 남편이랑 둘째 딸과 나는 아침부터 상큼하고 건강하게 과일을 챙겨 먹을 수 있었다. 말 안 듣는 첫째는 비록 아침과일은 못 먹었지만 낮에는 또 잘 먹을 수 있으간식으로 남겨둔다. 아침은 따로 먹고 싶은 걸로 챙겨줘야겠다. 서로가 원할 때 챙겨주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것임을. 내가 억지로 큰아이에게 먹일 수 없듯이 어머니도 과일 없다며 속상해하지 고 그냥 주고 싶을 때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다녀가셨으면 좋겠다. 딸이든 며느리든 다 내 맘 같을 순 없다.



새벽에 글을 마무리하다 혹시나 하여 냉장고를 열어보니 사과 세 개, 토마토 두 개, 오렌지와 귤들이 떼굴떼굴 굴러다니고 있다. 우리 엄만가, 아님 역시나 시어머니? 과일은 집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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