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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Feb 09. 2024

며느리 말이라면


글은 수시로 주춤거리는데 입맛은 날이 갈수록 더 살아나고 있다. 반대로 가야 될 텐데 이대로 계속 진행되면 뒷감당이 두려워진다. 지난주 시어머님이 줄기차게 방문하시어 그 덕분에 글도 쓰고 반찬걱정 없는 한 주가 되었다. 이제는 철판깔 겨를도 없이 더욱 당당해지고 있다. 이번에 부탁한 반찬은 바로 시어머니표 파김치다. 반찬가게는 사랑이지만 지나칠 때마다 일부러 사지 않았다. 요똥이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지만 내 입맛대로 손수 배달까지(?) 오는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말하길 며느리 말이라면 바로 만들어서 온단다. 사실 파김치는 남편과 첫째 아이가 더 좋아한다. 어제오늘 이 파김치로 큰아이와 남편 역시 덜어놓으면 있는 대로 젓가락질하기 바쁘다. 특히 남편이 만든 수육과 함께 먹어 더 안성맞춤이었다. 고기 위에 길쭉한 파김치 하나 얹혀 돌돌 말아먹거나 위에서 아래로 조심히 입속으로 밀어 넣으면 어떡해서든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라고 할 때마다 "그래, 그거 맛있더나? 내 만들어서 줄게"라고 하시는 시어머니의 한마디에 더 스스럼없이 메뉴를 요구하게 된다. 괜히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하지 않는다. 별 일 없이는 우리 집 방문을 하지 말라는 은연중의 통보 같았다. 어머니 말이라면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데 일단 보이지 않는 벽부터 치고 듣게 때가 많다. 어머님의 반찬이 하나씩 쌓이는 글을 볼 때마다 참 많은 걸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뭐라도 있으면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고 더 자주 연락드린다고는 하지 않는다. 입에 발린 말로 매일 오라고도 하지 않지만 오지 마세요라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해서도 안 될 말이지만) 그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왕래가 더 편하다. 주 보는 만큼 서로 하고 싶은 말은 하는 편이다.








드디어 설 명절이 다가왔다. 요리 똥손인 며느리가 시댁을 방문한다. 명절 음식은 어머니와 남편이 주로 전을 굽는다. 나와 동서는 보조를 한다. 서방님은 개인 볼일을 보고 커피수혈을 시켜준다. 예전보다는 음식을 많이 줄였다. 집집마다 개인 사정에 따라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물가가 오른 만큼 제사 장보기도 만만치 않고 이제는 오는 손님도 없다. 남편과 서방님이 어머니에게 설은 차례를 지내더라도 추석은 없애자고 제안을 한다. 어머니만 마음을 먹으면 된다. 언제든지 반찬 만들어달라는 며느리 말이라면 철석같이 들으시지만 명절에 다 같이 놀러 가자는 말에는 꿈쩍도 안 하시는 어머니는 이번 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내었다. 이때 필요한 건 글쓰기수업보다 시어머니를 설득시킬 수 있는 스피치를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심히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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