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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29. 2024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옆에 초6 둘째 딸이 밥을 먹고 있으면서도 심심하다고 한다. 주말에는 심심하단다.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엄마는 할 일이 많은데 우리 둘째는 왜 그리 심심할 꼬?"(공부하기 싫으니 심심하겠지) 학교를 좋아하는 것은 다행이다. 요즘 둘째의 머릿속은 세븐틴의 컴백과 새로운 다이소를 가는 것이다. 빨래가 끝났다는 종료음이 울린다. 잘됐다 싶어 중2딸에게 빨래를 꺼내 달라하고 심심하다고 노래 부르는 둘째에게 널어 달라고 했다. 큰아이는 "빼주기만 하면 되지?"라고 널지는 않겠다며 선언한다. 그나마 생각하는 둘째가 널어주었다. 빨래를 너는 동안 세븐틴 노래를 듣는다고 한다. 노동요를 들으면 그나마 시간이 잘 간다. 이 널려고 하니 하지 말란다. 그래야 그대들의 목소리를 더 오래 들을 수가 있다.

 



둘째 덕분에 일거리가 줄어 설거지만 하고 앉았다. 책을 읽다가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아침 일찍 시원할 때 걸으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오후 늦게 걸으려니 줌으로 독서모임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대낮에 나와야 했다. 여름도 오기 전부터 한낮의 태양은 이글거렸다.



공원에 진입하면서 러닝앱을 켰다. 오만에 혼자 나와 뛰어볼까 싶었다. 아주 천천히 뛰기 시작하는데도 초반부터 호흡이 가쁘다. 날씨 때문에라도 더 힘들게 느껴졌다. 금 더 버티다가 르막이 다가오자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5km 설정한 것이 스스로 무안해졌다. 15분을 뛰었지만 이미 얼굴은 불덩다.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바로 옆길로 새었다.


늘 바깥 길만 걷다가 오랜만에 숲길로 올라왔다. 울창한 녹음은 여전했다. 바닥이 잘 닦여져 있었다. 흙길이라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도 급하지 않다. 천천히 또 천천히. 차근차근 한 발씩 밟아나간다. 햇빛이 가려져 더위도 막아주었다. 불과 얼마거리라고 깥쪽 공기와 다르게 느껴졌다. 누구도 빠르게 걷는 이도 없다. 추월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내 속도로만 나아간다. 시 앉아만 있어도 정화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있으니 무념무상 된다. 희한하다.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도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편안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지금 이 자체가 너무 좋은데.



하루종일 무얼 적을지 고민했다. 독서모임으로 글 쓸 시간도 없었다.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브런치스토리에도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무조건 앉아만 있는다고 글이 써지지도 않는다. 때론 가벼운 엉덩이가 새로운 길로 안내해 준다. 자주 나간다. 누가 부르는 이도 없는데도 나간다. 예전에 누가 불렀다면 술 마시러 나갔다. 금주를 하니 자연스레 술자리도 사라졌다. 혼술도 하지 않아 공원으로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처럼 숲길에 올라와 기분이 묘하다. 사치와도 거리가 먼 나는 점점 도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읽고 쓰고 숲길에서 힐링하는 지금이 좋다. 달리기 할 거라고 혼자 나왔는데 남편 데리고 올 걸. 금봉산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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