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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Oct 30. 2024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금주 385일 차


금주를 하려고 마음먹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인증을 하면 진짜 끊어야 할 것 같아 계속 미루었다. 금주를 하고 싶으면서도 할 마음이 없었다. 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떡해서든 멈춰야만 했다. 23년 10월 13일 생애 첫 결단을 내렸다.

알코올, 참 지독하다. 사람마음을 이랬다가 저랬다가 울고 웃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그러니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


금주하는 목적이 처음부터 출간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한 달이었다. 겨우 멈춘 한 달. 이왕 한 거 12월까지만 연장해 보았다. 서서히 글쓰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출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는 아무도 모르게 다짐했다. 책이 나올지 안 나올지 나조차도 자신이 없었다. 미리 출간하는 날까지 금주한다고 말했다간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았다. 쓰고 있는 내가 있었기에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이어졌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다른 이유로 책이 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살얼음 맺힌 생맥주를 목이 쓰라리도록 시기로 했으니까! 금주하는 동안 저녁식사는 유난히도 안주될 만한 게 많았다. 삼겹살과 김치찌개, 라면만 봐도 소주가 생각나고 치킨과 쥐포, 과자를 먹을 시 절로 맥주가 당겼다. 어느 순간 음주욕구는 사그라들었지만 눈으로 보고 안주와 주종을 연결시키는 놀이라고 할 만큼 말하는 여전하다. "와~~ 칼칼한 국물에 소주 한잔 하면 지기겠다!!"라고 떠들지만 먹을 생각은 없는. 입만 분주하다. 그 느낌 알랑가 몰라.



10월 25일 드디어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이 손에 쥐어졌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눈물이라도 맺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다. 책을 직접 마주한 날보다 세상에 처음 선보이던 예약판매일이 오히려 더 심장이 나대었다.

살얼음은커녕 생각만 해도 이가 시리.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이어왔는지 알기에 선 듯 마실 수가 없었다. 내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지 않았다. 금주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과 마실까라는 유혹 속에 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다. 마나 기다렸던 날인데. 결국 출간 당일 맥주를 마시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공식적인(?) 금주 해지날을 밝혔으니 이제 편하게 마셔도 되겠다. 인스타에 한창 기록 중인 금주인증은 언제까지 하나. 안 하려니 허전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인증중독에 걸려버렸다.






나보다 더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모임이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예전에 가끔 나와도 마셨지만 내가 금주를 하는 바람에 그 조차도 기회가 사라졌다. 제는 마셔도 되지 않냐며 은근히 바람을 넣는다.


서 있기만 해도 코끝이 시린 겨울이 다가온다. 남편과 함께 뜨끈한 어묵국물에 소주 한잔 날 때다. 나만을 생각할 것인가 남편과 따뜻한 겨울데이트를 가장한 마실 기회를 엿볼 것인가. 의지와 사랑(?) 아니 의리냐. 혼자 진지하다. 어떤 선택이든 최선일 것이고 결과에 대한 미련은 남을 것 같다. 그 미련마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후회는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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