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리다. 바깥 기온이 한자리숫자가 되면 집안 공기부터 달라진다. 겨울이 되면 자연스레 따뜻한 걸 찾게 된다. 언제 산지 기억도 나지 않는 보리차티백을 꺼냈다. 여름동안 시원한 냉수마시느라 보리차 끊여먹을 일이 없었다. 귀찮기도 하고.
둘째가 기침을 한다. 감기기운이 있어 따뜻한 물을 주려다 맹물보다는 구수한 향과 맛이 나는 보리차를 끓여주었다.
금방 끓였을 때가 제일 고소하다. 작은 냄비에 한가득 만들어 놓으니 둘째보다 중2 딸인 첫째가 더 좋아한다. 한 잔 마시더니 시장에서 산 보리차보다는 맛이 약하다고 한다. 결명차도 넣어달란다. 고기도 먹어본 자가 안다고 예전에 시장에서 산 보리차와 결명차, 옥수수까지 넣어 끓여준 적이 있다. 한동안 정수기 물만 마셨는데 시장표 보리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큰아이가 학교에 들고 갈 거라고 다음 날 아침에도 끓여달라고 한다. 아침에 번거롭다며 생색을 냈지만 속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음공주라고 할 만큼 여름동안 냉동실 문을 여닫았다. 큰아이가 얼음을 와그작 부셔먹는 게 못마땅하다. 깨 먹지 마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나를 보는 듯하여 계속 머라 하지도 못한다. 얼음을 얼려놓지 않는 게 최선책이었다. 급하게 다가온 겨울은 얼음을 찾지 않도록 해주어 반갑기도 하다. 자연스레 몸을 데워야만 하는 계절이니까. 이 글을 쓰면서 이왕 마시는 거 보리차의 효능을 검색해 보았다.(네이버참조)
1. 심혈관 질환 예방
2. 활성산소 제거
3. 체중 감량
4. 피부 미용
5. 대장암 예방
6. 항염 효과
그 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효능에 눈이 커진다. 이왕 마시는 거 좋은 게 좋다고 더 애착이 간다.
기온이 내려간 아침에 보리차를 끓이니 냉했던 거실에 온기가 돈다. 따뜻한 보리차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니 아이들의 표정도 밝다. 우리 집 사춘기아이에서 밝다는 표현은 고성이 오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평화롭다는 뜻이다. 아무 일 없이 물 흐르듯 지나는 아침이 감사하다. 인상 찌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활기찬 아침을 예고한다.
가끔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못 먹고 갈 때도 있는데 보리차는 또 챙겨가네. 난 밥은 차려줬다. 네가 안 먹은 거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팔팔 끓이는 보리차로 너의 하루가 작게나마 온기가 채워졌으면 한다.
아침에 두 아이 모두 내가 끓인 보리차를 텀블러에 직접 담아간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핫팩만은 버티고 싶다.
큰아이가 핫팩을 주문해 달라고 한다. 지금껏 내가 핫팩을 사 준 적은 없다. 시어머니도 주고 사은품으로 받은 핫팩이 다 떨어졌다. 언제부터 핫팩이 필수품이 되었는지. 장갑 끼고 가면 되지. 굳이 돈 주고 일시적인 따뜻함을 가져야만 하는지. 일회용으로 만들어진 온기를 돈으로 사서 쓰레기를 만드는 것 같아 탐탁지가 않다. 겨울은 원래 차가운 거다. 손은 시릴지언정 마음만큼은 시리지 않게 하고 싶은데 또 사사로운 생각의 차이로 엇나간다. 정 필요하면 용돈으로 사기를.
핫팩대신 보리차는 안 되겠니? 예쁜 장갑을 사준다고 할까.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부지런은 떨어도 핫팩은 못 사주겠다. 당분간 보리차 끓이기는 아침 루틴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너희들이 좋으면 나도 좋다.
등굣길 오들오들 떨었던 손으로 텀블러에 가득 담긴 보리차 한 모금 마시겠지. 입안 가득 따뜻한 보리향을 느끼고 있다 생각하니 절로 마음의 온도가 1도 상승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