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은 두 가지로 요약뒨다. 장점을 발견하는 기술과 단점을 이해하는 기술의 합이다. 그 반대면 비극이다. 단점을 발견하는 기술과 장점을 무시하는 기술의 합은 여행을 망치는 기술이다.
기자질 할 때는 나 역시 반대의 기술을 익힌 사람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해서 문제를 지적하는 기술까지. 여행감독이 되어서는 모든 것이 반대다. 문제를 제기하는 기술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니면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대범함을 가지거나.
장점을 발견하는 기술을 익히니 여행 금사빠가 되었다. 여행지와 금방 사랑에 빠진다. 그러니 내가 여행지에 대해 하는 얘기에 대해 너무 현혹되지 마시라. 나는 여행에 눈먼 여행지 사랑꾼이다. 다음의 크루즈 선사 이야기도 너무 진지하게 듣지는 마시라. 그냥 인상비평적인 얘기일 뿐이다.
크루즈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확장된 미국’이라 할 수 있다. ‘너 어디서 왔니?’ 라고 물으면 우리는 보통 국가를 대는데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오하이오’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이런 식으로 미국의 주로 답한다. 크루즈의 로그값은 미국인 셈이다.
오션 크루즈 선사 중 내가 경험한 곳은 셀리브리티, 노르웨지안, 로얄캐리비언이다. 이 선사를 미국 도시 이미지에 비유하면 셀리브리티는 보스턴, 노르웨지안은 뉴욕, 로얄 캐리비언 LA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루즈 선사마다 특유의 톤 앤 무드가 있다.
이번에는 가장 최근에 탑승한 로얄캐리비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로얄캐리비언 크루즈는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 셀레브리티로는 그리스 크루즈를, 노르웨지안으로는 지중해 크루즈를 다녀왔다.
@ 크루즈 선내 시설
일단 크루즈 하드웨어는 로얄캐리비언이 가장 쳐진다. 식사와 침구에서 차이가 확연히 차이가 나타난다. 앞의 둘이 4성급이라면 로얄캐리비언은 3성급 정도다. 침대와 침구가 후지고 식사도 확연히 밀린다. 사실 로얄캐리비언에는 프린세스라는 상위 티어의 크루즈가 있다. 프린세스와 비교하는 것이 더 맞겠지만 로얄캐리비언이 미국 크루즈산업의 모태나 다름 없으니 이번에는 로얄캐리비언으로 비교해 보겠다(아직 프린세스 크루즈는 경험해 보지 못하기도 했고).
@ 메인 다이닝의 와인 리스트
메인 다이닝의 와인 리스트를 보이면 선명하다. 와인부심 강한 셀러브리티가 이런 것도 여기 있어? 하는 와인을 두루 포진시킨 반면 로얄캐리비안은 각 품종별로 구색을 맞추는 정도에 만족한다. 비비노 평점 3.8~3.9점대와 3.5~3.6점대의 차이 정도? 와인 리스트는 셀레브리티가 갑인 듯.
@ 크루즈선 내부 구조
크루즈선 내부 구조도 전체적으로 좀 답답한 느낌이다. 리모델링이 한 번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셀리브리티나 노르웨지안의 인테리어가 미국 중산층 동네 느낌이라면 로얄캐리비언은 중하층 동네 느낌? 데일리 뉴스페이퍼도 방별로 배포하지 않는다. 참고로 크루즈선 내부구조는 중정이 있는 북유럽 크루즈(탈린크 실자라인)가 가장 나았던 것 같다.
@ 크루즈 선내 퍼블리싱 구조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니, 특히 씨데이가 많은 아이슬란드-스코틀랜드 루트에 있다보니 크루즈선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데, 장점이 많이 보인다. 일단 셀리브리티와 노르웨지안이 신문사라면 로얄캐리비언은 방송사다. 실시간 방송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텔레비전만 켜 놓으면 대충 상황을 알 수 있다.
@ 크루즈 선내 매장
앞에서 세 크루즈 선사를 미국 도시로 비유했는데, 이탈리아 도시로도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셀러브리티가 밀라노, 노르웨지안이 베니스라면, 로얄캐리비언은 나폴리다. 크루즈 매장이 완전 나폴리 장터를 방불케 한다. 매일 10달러짜리 옷들로 늘어 놓고 현혹한다. 다른 크루즈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 크루즈 크루의 팀워크
이제부터는 로얄캐리비언의 장점이다. 크루들이 유기적이라는 느낌이다. 뭔가 원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파도와 바람 때문에 기항지에 내리지 못한 뒤의 대처가 매우능동적이었다. 와이파이 빵빵하게 제공해서 사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국난 극복’이 취미인 한국인과 잘 맞는 듯.
@ 극장 공연 라인업
공연 레퍼토리나 공연자들의 무대 장악력이 마음에 들었다. 각각의 극장 나와바리를 확실히 챙겨서 나름의 팬질도 유도했다. 레퍼토리가 잘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씨데이가 많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른 크루즈 공연과 다르게 확연하게 맥락이 잡힌 듯.
@ 초심자에게 적합한 크루즈는?
이번 크루즈에 참가한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소감이 참 편안하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크루즈라는 것에 대해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직접 이용해보니 편안하고, 자신만의 루틴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크루즈 초심자들에게는 로얄캐리비언이 거리감을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로얄캐리비언베이는 설립자가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점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대학생 때 장교로 참전해서 동성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다. 훈장을 받을 정도로 전장에서 용감무쌍했던 것 같은데 그 모험가적 기질을 사업에 잘 응용한 것 같다. 암튼 기회가 되시면 크루즈를 함 이용해 보시길~
크루즈하면 보통 ‘고급’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오션 크루즈는 대부분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았다. 마치 철지난 대명리조트에 간 기분. 고급스러운 크루즈를 원한다면 리버크루즈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오션크루즈가 일반 비스트로라면 리버크루즈는 파인다이닝이다.
여행감독으로서 크루즈를 이용하는 이유는 고급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용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번잡하고 비싸지는 곳, 이를테면 지중해 섬여행이나 남태평양 섬이나 하와이 같은 곳들. 아니면 물가가 비싼 나라에 갈 때 가성비 좋은 숙소와 식사를 보장해서 이용한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같은 곳들. 나이가 들수록 크루즈 여행은 더 유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