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나 확률이 반반일 때 영어로 fifty to fifty 란 표현을 쓴다. 이는 100이란 숫자를 최대점으로 설정한 것이다.
요즘 백세 인생이란 문구를 자주 접한다. 2019년 기준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79.7세, 여성의 기대 수명은 85.7세로 평균 82.7세라는 통계가 있다. 앞으로 3, 40년 후에는 백세 가까운 초고령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지금의 50대, 60대의 중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예측대로 평균 100세 수명을 가정한다면 현 50 대는 정확히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셈이다. 일찍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이웃 일본의 예를 보아도 100세를 넘긴 노인들이 적지 않으니 5, 60대는 제2의 인생 출발점이라는 표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징병 기록 문서를 살펴보면 과거 로마인들의 평균 수명은 25~30세 전후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유아 사망률이 30%를 넘었으니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성년의 경우 실제 수명은 이보다는 높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환경공해 등의 불리한 생존 조건은 없었으나 식량부족, 전염병, 전쟁 같은 요소들이 인구의 평균 수명률의 증가를 억제했다. 그중에서도 천연두나 말라리아 등의 질병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의 인구 증가는 영국에서의 산업혁명 이후식량 생산 증가와 의학의 발전으로 고질적인 전염병 예방 및 치료에 힘입은 것이다.
Boomer Remover(베이비 붐 세대 제거자)라는 신조어가 코로나 초기 사태 때 서구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Boomer는 1960년대 전후에 태어난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쟁) 후 경제 부흥기에 태어나 상당한 경제, 사회적 파워를 가진 이들이다. 이제 이들이 6,70대의 노년기에 접어들었는데 유독 코비드 19 바이러스에 취약해서 사망률이 높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Boomer Remover라고 빗대어 부른 것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 젊은이들은 사회 비용 구조상 자신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고령층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게 Thank you, Remover!라고 속내를 보이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의 50대는 60대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세대이다. 대체로 태어난 시기에는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 대가족 단위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조부모와 부모 세대는 많은 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고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해야만 했다.집안의 나이 든 누이들은 집안 살림과 오빠나 남동생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의 일터로 향했다.
저임금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여러 해 동안 국가 경제 성장률이 급성장하면서 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때인 1990년 전후에는 일자리가 풍부했다. 졸업 시즌엔 대기업 신입 채용 담당자들이 대학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인력 확보에 열을 올렸다. 취업 후에 또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한 경제 상황은 적당히 저축하여 결혼하고 전세에서 자가로 옮겨가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때 태어난 지금의 30대, 40대는 아마도 어린 시절에 별다른 경제적 부족함을 겪지 않은 대한민국의 첫 세대일 것이다. 특히 일부이지만
1970년~1980년 사이에 태어나 부모의 경제적 혜택을 받고 서울 강남 압구정동 일대에서 사치스럽게 생활을 누리던 20대들을 오렌지족이라 칭했다. 그러나 90년대 말에 IMF사태라는 국가 경제 위기를 맞은 후 그러한 소비 행태는 사라졌다.
친했던 대학 동창은 어렸을 때 학교 수업료가 체납되어 제시간에 하교도 못하고 일종의 벌 청소를 자주 했었다고 술자리에서털어놓았다. 그 시절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도 몇 되었는데 점심시간이면 밖에 나가 쇠 비린내 나는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그 당시 교육청에서는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각 학교에 빵을 배급하는 사업을 시행했다. 학급 당번이 빨간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긴 빵을 교실로 가져오면 구수한 빵 냄새에 모두가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빵을 도시락이 없던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았다. 그 친구에겐 그 빵이 저녁식사가 될 수도 있음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