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는 나이 들면서 조금씩 주책이 늘고 푼수스럽게 변하게 된다.
호르몬의 변화 탓도 있겠지만 그건 자리 탓이 크다.
식탁 끝은 엄마가 여러 번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기에 편한 자리이다. 식사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다가 잠깐 그곳에 앉아 어쩌다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하게도 된다. 그러면 학교에서 배운 논술로 무장한 자식들은 최신 정보까지 장착하고 엄마의 지적이 부당하다는 듯이 반박한다. 그러면 엄마는 어느 순간 방향감각을 잃고 두서없이 얘기하다가 마침내는 어설픈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만다.
때때로 남편은 자신이 우월한 분야인 정치 경제 이슈로 엄마의 무딘 감각을 조롱한다. 드라마 그만 보고 신문 좀 보라고, 공부 좀 하라고. 얘들 혼사 때 사돈에게 창피당하기 십상이라고.
엄마는 가족들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지만 조금의 실수도 용서받지 못한다. 빨랫감이 없어져도 엄마 탓이다. 욕실에 때가 끼어도 엄마 탓이다. 쌀에 문제가 있어서 밥맛이 없어도 모두 엄마 탓이다. 엄마는 쌀 사기 전에 마트에서 생쌀을 한 움큼씩 먹어봐야 할 판이다. 그 쌀을 다 소비할 때까지 엄마는 주눅이 든다. 그냥 확 다 퍼다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감히 그 아까운 쌀에 손을 대지는 못한다.
친구들 모임에서 다들 가족 자랑하는데 엄마는 가족들 흉을 보고 싶다. 그러다 누군가 하소연을 시작하면 너도 나도 넋두리를 늘어놓게 된다. 이때다 싶어 남편 얘기, 자식 얘기에 흉을 섞어 내고 나면 나중에 슬며시 후회감이 든다.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서 뭔가 또 실수한 느낌이 밀려온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말껄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땐 새촘하게 앉아서 듣기만 하는 옆자리 의 애라 엄마가 얄미워진다.
집에 돌아오면 본인의 위치를 또 한 번 실감한다. 아무도 개똥을 치우지 않고 엄마가 올 때까지 서로 미룬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애완견과 동급인지 아님 그 아래인지 알 수 없다. 사실 가족들은 엄마보다 새로 입양한 강아지에게 더 큰 애정을 쏟는다.
엄마는 아파서도 안된다. 먹을 밥 걱정하는 남편, 청소 차지될까 염려하는 딸, 아무 생각 없이 굶고 있을 아들. 엄마의 신체적 아픔은 각자의 이유로 경계 대상 1호이다. 진심 어린 위로는 기대하지도 않는데 왜, 또 아픈 거야?라는 말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다가온다. 아픈 엄마는 가정이란 시계를 고장 낸 죄인의 기분이 들뿐이다.
엄마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역정을 낸다. 그러면 자식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 우리 엄만 전에 안 그랬는데 왜 저러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판단력도 흐려지고.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아무도 진심 어린 대우를 해주지 않기에 참았던 화가 본인도 모르게 솟구친 것이다. 그래서 더 맥락 없어 보이는 것이다. 이건 감정의 문제이니까. 심정의 문제이니까.
가족 모두 중요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걸 알기에 식구들에게 끝없이 에너지를 퍼주다 보니 엄마는 이제 빈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빈 거죽이 된 자신을 들킬까 봐 오늘도 생기 있는 척 연기를 한다.
엄마는 어느새 미웠던 엄마의 엄마가 자꾸 생각난다. 그리워진다.
- 울 엄마도 그랬구나.
가슴에 큰 멍을 안고 살았구나...
같은 나이에 족히 두배의 짐을 지고 사느라 앙상할 수밖에 없었던 친정 엄마 어깨는 얼마나 시렸을까... 엄마는 설거지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떨군다. 거실을 지나던 딸네미가 눈치를 보더니 쪼르르 지 아빠한테 가서 엄마 갱년기 왔나 보다고 고자질하듯 소곤거린다. 남편은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신문만 펼쳐볼 뿐이다.
저절로 큰 줄 아는 자식들에게 가끔은 니들이 어디서 나왔는데! 말하고 싶어도 조리 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 누가 낳아달라고 했어?라고 맞받음이 돌아올 것도 뻔하다. 남편도 말 그대로 남의 편이니 별 소용이 없다. 그냥 한숨 쉬며 베란다 끝의 화초 잎이나 매만진다.
엄마의 모습은 엄마의 엄마가 마루 끝에 서서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보던 모습과 어느새 닮아 버렸다. 엄마의 엄마도 가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먼 산 너머의 친정 부모님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촉촉한 눈가의 친정 엄마 자리가 마루 끝이었던 것처럼 이젠 엄마의 자리도 화초만이 나와있는 베란다 구석 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