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는 나의 힘

빗소리

by 김도형



빗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침실 창문에 후드득 부딪히는 소리가 있고, 베란다 안 쪽 어딘가에서 툭툭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있고, 멀리 도로 맞은편 샵의 천막 처마 위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있다. 펼친 우산에 토도독 부딪히는 소리도 있고 멀리 선정릉 숲에 스며드는 진동 없는 소리도 있다. 빗소리들은 각자 다른 템포로 여울진다.

비는 먼 하늘에서 하나의 모습으로 내려와 사람의 동네에 다다르면 각자 벽에 스며들기도 하고, 긴 물통을 따라 수직 낙하하기도 하고, 차의 보닛에 몸을 부딪히며 튀어 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서 도시를 적시고 건물을 적시고 사람을 적신다.


빗소리는

누군가에게 기다림이며,

추억이고,

회한이다.


비는 평등하게 내려와서

지상에

각기 다른 소리를 떨군다.



고등학교 시절은 3년 내내 정규 수업과 보충 수업으로 학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루에 도시락은 두 개가 필요했으며 하교 길엔 밤하늘의 별을 보아야만 했다.


짧았던 어느 여름 방학 날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있어 갑갑했던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고무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으로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센 비바람에 거리엔 인기척이 끊겼고 지나는 차량마저 드물었다. 장대비가 온몸을 때렸다. 얼굴이 얼얼했다. 거칠게 비와 비가 부딪히는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적막한 세계를 경험했다. 모든 것이 젖어 나부끼는데도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요했다. 큰 거리와 춤추는 비바람과 바라보는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것 같았다. 비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맨 몸으로 그토록 비를 맞게 만든 것일까?...

그날의 빗소리는 주술과 같았다.

그 이후로도 빗소리는 늘 함께 했다.
늦은 밤 홀로 골목길을 걸을 때,
헤어져 다시 만날 수 없어 서러울 때,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내 영혼이 가여워 흐느낄 때,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부모님이 그리울 때도.


비와 빗소리, 바람소리, 눈과 폭풍우는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려고 애썼다. 때로는 아프고 공포스러웠지만 상처도 마다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들이 건네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삶의 내밀한 정원으로 한 걸음씩 행보를 지속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다만 걸어 나아갈 때 존재한다는 사실만 자각하고 있을 뿐이다.




(요 며칠 동안 엄청난 장맛비가 내려 천과 강이 범람하고 다수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분들은 인터뷰에서 빗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떨린다고 하였다. 백색소음으로 불면증 완화에도 활용되는 빗소리가 이번에는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분들의 피해가 속히 복구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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