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일

제주바다와 어머니

by 김도형


먹는 것이 고역일 때,
일상이 깨졌음을 알게 된다.
엄마는 오늘의 내 말을 예전에 미리 하셨다.
-먹는 것이 모두 소태 같다... 소태 같이 쓰구나...


소태?
왜 그렇게 입맛이 쓸까?
어린 소년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굳이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몸이 알아서 답을 했다. 비록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미리 준비할 수도 없는 삶의 빈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신음이었다.

한두 해만에 삭히지 않는, 삶의 긴 여정 끝에 토해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한숨이었다.

사실 소태나무는 한방에서 건위제로 쓰이며 소화불량과 위염을 다스린다고 한다.

식욕부진에도 사용하는데 맛이 매우 쓰다.

그 쓴맛이 질환의 고통과 결부되어 언급되곤 했다.

그렇게 소태는 내 언어집에 편입되었다.

제주 바닷가 호텔 식당에서 어머니의 부엌이 떠올랐다. 기름칠로 검푸르게 빛나던 솥과 하얗게 피어오르던 김서림을.

그리고 신들의 숨결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던 아궁이의 작은 번갯불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한옥 반지하공간에서 마술처럼 완성되던 상차림과 그 사이사이에 음식을 덥히던 여인들의 회한을 결코 놓아버릴 수 없다.

검은 부엌장에 가지런히 놓인 흰 그릇들은 적당히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금이 가고 이가 빠졌다.


수시로 아궁이 불의 세례를 받고 굴뚝으로 빠져나간 연기는 때때로 불순한 기후 탓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런 연기는 굴뚝 끝에서 흘러내리며 뒷마당에 낮게 깔렸다.

그리곤 짐승처럼 슬금슬금 뒤뜰을 배회하였다.

어느덧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가만히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 내내 바람은 쉼 없이 불어댔고 발밑의 풀꽃들은 흔들리며 인내를 배웠다.

그리고 가끔씩 알 수 없는 노래를 읊조리는 나그네들을 마주쳤다.

때론 바람이 노래마저 쓸어가 버렸는데 쓸쓸한 하늘 아래서도 나는 변함없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육신을 지탱하고 상처 난 영혼을 보듬었다.

세월이 그렇게 내민 그릇이 내 삶의 전부였던 것이다.

통유리 밖으로 바다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테이블 위 접시에는 먹다만 음식이 절반이나 남았다.

오늘따라 옥빛으로 숨 쉬던 밥알들과 숯불 위에서 끓던 어머니의 청국장이 불현듯 사무친다.




몸이 조금씩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살아온 날들이 너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땅의 정령들이 내 식탁을 눈앞에서 아주 치워버리지 않는 한, 삶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고 남은 시간은 매 순간 무게를 더하며 저녁 강물처럼 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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