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지팡이

그대의 의지처

by 김도형


소포클레스는 스핑크스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졌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대답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인면 괴수 스핑크스. 그 괴물은 오이디푸스의 단 한마디에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괴물을 물리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 되어 왕위에 올랐다.
과연 절대 권력으로 가는 그 비밀의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후대를 위한다면 소포클레스는 작품에서 마땅히 그 대답을 밝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입에서 입으로만 은밀하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인간의 일생을 통찰하지 못하면 스핑크스의 소름 끼치는 포효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오이디푸스는 폭풍우와 같이 몰아치는 괴수의 무시무시한 압박을 견뎌냈다. 그는 스스로 사람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를 악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갗을 찢는 칼날 같은 바람에 몸을 부들부들 떨 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또렷한 두 눈동자에서는 자각의 불꽃이 튀었고 그 불꽃은 주변을 태우며 거센 불길로 변했다. 마침내 스핑크스는 번져오는 불길을 피해 괴성을 지르며 차가운 물에 몸을 던져 영원히 사라졌다.


그 이후의 영웅담은 사족일 뿐이다. 왕좌를 차지했든, 홀로 동굴로 들어갔든, 평범한 가장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이야기의 장식에 불과한 것이다.




불가에서도 하나의 질문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수행 방식이 있다. 몇 년을 계속하기도 하고 평생을 이어가기도 한다. 자각의 순간이 올 때까지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이다.


우리 모두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거울을 본다. 그때마다 거울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여기에 비친 그대는 누구인가?

그러나 성찰의 힘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고개를 돌려 대답을 회피한다. 그리곤 슬픈 표정으로 사람의 얼굴을 가진 짐승을 올라탄다. 그리고 그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해답을 얻을 때까진 야수의 품을 벗어날 수 없다...

이야기 속에는 사람을 지탱하는 9개의 발이 등장한다. 그중 유일하게 사물로서 신체의 일부로 인정받은 것이 지팡이다. 지팡이는 몸을 지탱하며 생의 3막을 말없이 함께하는 존재이다.


남양주 봉선사의 뒤뜰에서 지팡이 하나를 의지해 고요히 경행하는 노승의 뒷모습을 보았다.

긴 지팡이는 반걸음씩 천천히 앞서 나가며 나이 든 비구니와 동행했다.

간혹 땅에 끌리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했다.

노승의 지팡이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소포클레스가 인식한 사람의 모습은 시간과 공간의 변이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인생을 길게 볼 것도 없다.

하루라는 시간도 일장춘몽을 각색하기 적당한 길이가 아닌가?

마침 봉선사 뒷산으로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부처님께서는 노년의 여러 자식보다 지팡이 하나가 낫다고 하셨다.

봉선사의 철쭉과 창포꽃을 감상하며 걸었다. 그곳에서 나를 지탱해줄 지팡이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에게 의지처가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봉선사와 아름다운 광릉 숲길을

웅씨 엄씨 친구 내외가 안내했다. 그들은 나의 먼 처소까지 왕복하며 아름다운 지팡이 역할을 했다.


* 요즘은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동네 경로당에도 출입구에 지팡이를 세워 놓은 경우가 드물다. 평생을 구부리고 농사일에 종사한 인구가 적어진 탓이겠다. 또한 건강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몸 관리가 향상된 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노인들을 본다. 유모차에 아기는 없고 애완견이 타고 있거나 대개는 비어 있다. 지팡이 대신 낡은 유모차가 불편한 걸음걸이를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골의 어느 경로당 마당에는 유모차가 몇 대씩 주차한다고 한다. 2020년대 한국의 풍속도에는 이렇게 빈 유모차가 노년층의 지지대로 사용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keyword
이전 11화코로나 시대의 투자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