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천상병의 소풍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다

by 김도형


어제 저녁 티브이의 한 프로그램에 전남 무안의 산골에서 홀로 지내는 남자의 일상이 소개되었다. 어미개와 새끼 두 마리, 그리고 담장 위의 고양이 한 마리도 함께 출연했다.

그는 산속 생활이 외롭지 않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 지구 별에 소풍 왔으니 행복하지요.

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천상병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란 구절이다. 시의 표현은 간결하고 동요적 리듬과 감성을 빌렸기에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그 핵심 소절을 심중에 얻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치 시는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걸어간 선승들의 선시와도 닮았다.


이 세상아름다운 소풍이라고 노래하려면 생의 바닥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그 진정한 의미를 건져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발설이 가진 무한대의 중량을 감당해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당시 생의 가장 큰 고난을 겪은 후 이생의 저편을 동경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천 시인은 애초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반공법으로 체포된 뒤 모진 고문을 받고 거의 폐인이 되었다.

동백림 간첩 사건 재판 기록 사진

시인은 군부 독재의 기획된 간첩 사건에 희생된 여러 인사들 중 한 명이다. 그 목록에는 화백 이응로, 작곡가 윤이상 등 문화예술계의 대표 인사들이 포함되었다.

천 시인은 감금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행방불명되었기에 결국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문인 친구들은 그의 시를 모아 "새"라는 유고시집을 발간하였다. 출간된 시집 덕에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극적으로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행려병자가 되어 그곳으로 이송되었던 것이다.


그가 6개월의 투옥 끝에 무혐의로 풀려났음에는 두 가지 정황이 유추된다.

첫째, 그가 간첩행위와 이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부당한 시인을 끝까지 거부하고 견딘 것.

둘째, 그 결과 모진 고문 끝에 폐인 상태에 이르자 군사당국에게는 그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


그는 심문 과정에서 심한 전기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장애를 지니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경이롭게도 창작을 이어갔다. 그렇게 참혹했던 고문의 기억을 시로 토해냈다.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중략)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强者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1971.2 월간문학)


시인은 고문에 대항하여 진실을 지켜낸 강자이었지만 동시에 새처럼 여린 존재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으로부터 헌신적인 간호를 받았고 마침내 1972년에 그녀와 혼인하였다. 그 이후의 생애는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그는 그 빚을 시로 되갚았다.

생전에 단란했던 부부. 지금은 두 분 모두 작고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 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요!

늙은이 오십 세 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 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요, 그래서 행복(幸福).

부인 목 여사는 오랫동안 인사동에서 <귀천>이라는 찻집을 운영하며 수많은 문인들과 독자들의 사랑방 안주인 역할을 했다.

내가 친구와 함께 방문했을 때 본 그녀의 모습은 초로의 자그마한 여인이었다. 차맛은 여느 인사동 찻집과 비슷했으나 좁은 공간에는 고목이 누워있는 깊은 숲 내음 같은 향기가 떠돌았다.


술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고 즐겼던 시인. 그는 이 신의 은총이 없었다면 지구 행성에서의 삶이라는 형벌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지상의 모든 시인들처럼 끊임없이 떠나고픈 심사를 여러 번 드러냈다.


<날개>

(중략)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새>

가지에서 가지로
나무에서 나무로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

(중략)

저것 보아라.
오늘따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한 마리 새가 날아간다.


시인은 말년에는 어린싹들을 동경하는 시를 썼다.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인은 2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에서 시인의 간절한 심정이 전해진다.

어찌 단 하나도...라는.


어린이를 사랑하던 그는 63세의 나이로 이 세상 소풍을 끝냈다.(1993.04.28)

티 없는 소년의 표정을 지닌 시인은 분명 하늘의 빛나는 별로 돌아가 자신의 노래를 완성했을 것이다.




요즘 살갑게 눈에 들어오는 그의 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처럼 내 영혼도 시절 따라 시의 옷을 갈아입는다.


<쉰 살 즈음에>

늙어 가는 것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게 더 서럽다

내 나이 쉰 살...
그 절반은 잠을 잤고
그 절반은 노동을 했으며
그 절반은 술을 마셨고
그 절반은 사랑을 했다

어느 밤...
뒤척이다 일어나
내 쉰 살을 반추하며
거꾸로 세어 본다

쉰, 마흔아홉, 마흔여덟, 마흔일곱...
아직 절반도 못 세었는데
왠지 눈물이 난다


요 며칠 밤하늘에는 목성과 토성의 대근접이라는 장관이 벌어지고 있다. 제대로 이를 관찰할 도구도 없고 맨눈으로 보기엔 시력도 좋지 않다. 하지만 주위에서 관심을 가지니 이때 한번 하늘을 올려다볼 만도 하다.


그러다가 어쩌면 별이 되어 반짝이는 시인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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