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함과 사람을 속이는 술법

- 두 범죄에 대한 조선의 판결 -

by SeonChoi

은 구석기시대부터 있어왔다고 이야기된다. 과일에 천연효모가 번식하여 술이 된 과실주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농경을 시작한 뒤로는 곡물로 빚은 술이 등장하였다. 고대 사회에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의식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며 술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술이 취한 상태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형을 감형하는 ‘주취감형’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국회에서의 법 개정안 논란이나 형법의 원칙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진술할 능력은 없다. 다만 역사에서 비슷한 사건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1782년(정조 6), 전라도 강진에 살던 장영호(張永浩)의 옥사(지금의 재판)가 있었다. 사건에 대한 조사와 처리를 기록한 판례집인《심리록》의 기록이다.


장영호가 술에 취하여 사노비 은남(銀南)의 집에 들어가서 귀신을 쫓는다는 핑계로 나무와 돌로 방 벽을 마구 두들기다가 잘못하여 은남을 쳤는데, 3일 만에 죽었다.

[상처] 명치가 검은색으로 변하여 단단하였다.

[원인] 구타당한 것이다.


살인은 대개 사형에 해당되는 중죄이므로 삼심제에 의거하여 중앙에 까지 사건이 올라왔다. 조선시대에 사형죄는 ‘세 번 심사(재판)하여 왕에게 보고한다.’는 규정이 법제화되어 시행되었다. 따라서 서울과 각 지방에서 사형죄는 예외없이 왕에게 직접 보고되었고, 형조가 세밀하게 조사하여 재가를 얻어야 했다. 장영호 사건에 대한 각각의 조사에 따른 판결이 내려졌다.


[관할 지방인 전라도의 조사] 사건이 비록 취중에 발생한 것이나 실정은 병을 낫게 하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고의로 범행한 것이 아닌 듯하니, 감형함이 공정한 판결일 것입니다.

[중앙 형조의 조사 1] 실제 정황이 고의로 범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벼이 처분하여 감형한다면 죽은 자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중앙 형조의 조사 2] 고의냐 실수냐를 막론하고 피살된 것은 분명합니다. 비록 술에 취하여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핑계를 대나, 참작하여 용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어 장황한 판결문이 기록되어 있다.


술에 취하여 본래의 성질을 잃었다는 것으로 정상 참작하여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데에 주안점을 두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살인 옥사에 있어서 정신병자일 경우 형률을 감한다는 것은 정신병을 앓아 생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지금 만약 술에 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것을 정신병과 동일하게 보아 번번이 사형을 용서한다면, 살인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술을 마시고 내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술이 그런 것이라고 할 것이니, 이 어찌 훗날의 폐단에 크게 관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술 취한 뒤’라는 말은 마땅히 거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잘못 급소를 맞은 것이라면 고의로 죽인 것과는 다르다. 그것을 참작하여 사형을 면하도록 처분한다면 그것은 너그러운 판결일 것이다.

그러나 ‘술 취한 뒤’를 거론하는 것은 너무나도 사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술 취한 상황은 전혀 고려할 문제가 아니지만, 급소를 잘못 쳐서 죽게 한 것이므로 고의적인 살인은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여 우려하였다.


사람을 속이는 요사한 술법은 참으로 고질적인 폐단이다. 저 장영호라는 자는 양반으로서 귀신을 쫓는다는 구실로 부적을 만들고 주문을 외워 인심을 현혹시켰으니, 이 죄가 본래의 죄보다 더 심하다.


헛된 주술로 사람을 현혹시킨 죄가 매우 심하다는 판결이다. 이를 가볍게 보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였다. 그러니 장영호를 유배형에 처하되 수시로 엄중하게 지켜 다시는 그런 술수를 부리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즉 이 사건에서 첫째 술 취함은 고려할 조건이 아니라는 것,

둘째 잡술로 인심을 현혹시킨 죄는 병을 고치려다 사람을 죽인 죄(과실치사) 보다 더 나쁘다는 결론을 볼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술에 취한 여부는 아예 거론될 필요도 없다는 조선시대 판결에 동의한다. 또한 연약한 사람의 약한 면을 악용하는 자도 혐오한다. 아프고,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 힘든 사람들을 자기 유익을 위해 현혹하는 죄는 참으로 비열하다. 백성에 미치는 해악이 크므로 엄중하게 다스리라는 뜻이 깊이 이해된다.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잘 되새겨보고 싶은 역사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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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김재홍 작.

신선세계를 동경하며 술과 달을 노래한 시인 이태백(701~762). 그의 낭만과 풍류를 사모하며...


※ 《심리록》 - 조선 후기 영조에서 정조 연간에 이르는 시기 각종 범죄에 대한 조사와 처리에 관해 기록한 판례집. 1799년 정조의 명으로 문신 홍인호, 홍의호가 편찬(필사본). 인용한 원문의 출처는 고전번역원DB(선종순 역). 필자가 보다 쉽게 풀어 다시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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