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의 함정

- "으이그, 이 바보..."를 멈추기 위해

by SeonChoi

종종 공공장소에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혼자만 알아들을 정도로 중얼거리기도 하지만, 고래고래 큰소리로 화를 내며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소리는 크지만 알아듣기 힘든 외마디 말들이다.

풀어내지 못한 어떤 기억에 여전히 묶여있는 것일까.


상황이나 내용이야 다 다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일찍이 혼잣말로 되 뇌이기를,

“인생에 부귀란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이렇게 생활할 여건을 마련해 놓고서 즐겁게 살아가며 늙는 것을 잊어버릴 수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행하게 헛된 이름에 잘못 끌려가 영욕과 이해가 난무하는 길거리에 몸을 내맡긴 채 갈피를 못 잡고 돌아설 줄을 모른 결과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일 없이 벌써 늙고 병든 몸이 되고 말았다.


조선의 문신 장유(張維, 1587~1638)의 글이다. 혼잣말로 되 뇌이며 다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을 토로했다. 젊어서 뇌인 혼잣말을 다시 뇌임은 여전히 과거에 마음 한 조각 묶어두고 있음이 아닐까 한다.


그의 표현처럼 피동적으로 몸을 내맡긴 것 같은 길거리에서 갈피를 못 잡고 되돌아서지도 못하며 살아온 시간 동안 얼마나 저 말을 혼잣말로 되뇌었을까. 어쩌면 현재의 삶을 과거에 다짐한 혼잣말을 기준 삼아 판단하며 불행으로 돌아봄이다.


조선의 문신 이정귀(1564~1635)는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일이 있다. 마침 12월 마지막 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재난과 질병을 몰아내는 푸닥거리가 열렸다. 요란스럽게 꽹과리와 북을 치며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자 이정귀는 학질이 걸린 지 오래이니, 혹 이 푸닥거리를 통해 자신의 학질도 쫓아 보낼 수 있겠다 생각하였다.

이에 학자답게 ‘학질을 쫓아 보내는 글’을 지었다.


내(학질)가 그대(이정귀 자신)를 보니 그대를 병들게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오.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로 얘기하고 바보처럼 웃다가 까닭 없이 통곡하며 가슴이 답답하여 늘 갈증이 나고 얼굴이 참담하여 생기가 없는 것은 그대의 심장이 병든 것이다.


학질만이 아니라 오래 병고에 시달리는 까닭으로 스스로 지목한 것은 이른바 ‘심장이 병’ 들어서였다. 그 증세가 혼잣말하다가 웃고 울기까지 하는 일이다. 그가 이렇게 혼잣말을 반복하며 병든 원인이 될 정도로 풀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어디에 차마 하지 못함이니 혼자서 이야기하며 그저 웃고 울고 답답하며 힘들어하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혼잣말은 남에게 하지 못하고 나에게 하는 말이다. 좋은 일이라 조심스러워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장유의 경우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회한을 읊조리거나, 이정귀의 글처럼 여전히 심장을 아프게 하는 일에 묶여 때로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경우가 흔하다.


나의 전공은 역사학이기에 늘 과거의 사람을 현재의 입장에서 들여다본다. 그런데 역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철칙이 절대로 “만약”을 가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학은 이미 일어난 일을 대상으로 삼으며, 그 일은 절대로 달라질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거라고 말하지만 시간의 본질은 연속성에 있고, 시간을 인지하는 순간 그것은 지나간 시간이 된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간과 아직 지나가지 않은 시간만 존재한다고도 말한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시간에 지나간 시간의 일을 여전히 끌고 가는 지름길이 "만약 이랬다면..."이다. ‘만약 이랬다면’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혼잣말은 바꿀 수 없는 과거로 나를 끌고 들어갈 뿐이다.


어느 날 나 역시 혼잣말을 자주 중얼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과도 같은 말들이었다. 심장인지 머릿속인지에 여전히 인처럼 내려놓지 못한 기억이 박혀있음이다. 주로 ‘으이그.. 이 바보’,‘어휴, 왜 그랬니’ 등의 자책이었다. 그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먼저 혼잣말을 멈추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혼잣말은 혼잣말이 아니라 내가 듣는다. 내가 가장 잘 듣는 나의 혼잣말을 멈추고자 한다. 그래야 미래를 향해, 세상을 향해, 다른 이들을 향해 내 귀가 더 활짝 열리리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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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혼잣말>


(으....점점 더 다리가 저려온다. 넌 7키로가 넘는단다...)

(하루종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아...잠이 솔솔와.)



※ 장유의 글은 《계곡선생집》 8, 〈식영당기〉. 이정귀의 글은 《월사집》 33, 〈학질(瘧疾)을 쫓아 보내는 글〉, 출처는 한국 고전번역원 DB.

※ 그림은《슬픔도 미움도 아픔도, 오후엔 갤 거야》2021, 흐름, 159쪽에 수록한 삽화.

진지한 글에 찬물 끼얹는 자작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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