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병’이 한의학은 물론 서양의학에도 진료과목, 질병정보의 항목에 올라있다. 울화병, 가슴앓이 등으로도 부른다. 홧병이 지속되면 여러 신체 질환이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한다. 예전에도 실제 홧병으로 사망했다는 사례가 제법 보인다.
조선 중종은 명나라에 사절로 다녀온 김광철을 부른 자리에서 물었다.
“진 황후는 어찌하여 서거하였느냐?”
식사 자리에서 황제가 진 황후에게 술잔을 올리라 했는데, 황후가 황제의 뜻을 잘 맞추지 못했다고 한다.
황제는 진 황후를 꿇어 앉히고 당시 총애하던 장 황후와 함께 별실로 들어가 버렸다.
(발로 걷어찼다는 말도 있다).
“밤이 깊은 뒤에야 진 황후를 물러가게 하였는데, 진 황후가 여기에서 홧병을 얻어 얼마 안 되어 서거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중종이 황궁 안의 일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평소 친분이 있는 환관에게 들었다고 하였다.
관직에 있었지만, 일이 어그러져 홧병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 송나라 정방(程昉)이라는 사람은 왕안석(1021~1086)이 한때 자신에게 일을 맡겼으나 곧 멀리하자 홧병이 나서 죽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대 조 박(趙璞)은 과거에 급제(1544)하여 사관을 거쳐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명종 2년(1547) 공신을 박탈당하고 함경북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실록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연려실기술》에는 “마침내 홧병으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천계(李天啓)는 중종 32년(1537)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지만, 명종 즉위년(1545)에 관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홧병으로 죽었다.”라고 나와있다.
모욕, 억울, 분노, 절망을 안고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른 경우이다. 현대 의학에서 홧병 치료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치료와 관리가 진행되어야 그나마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진 황후를 예로 보았지만, 넘어가기 힘든 어려움을 겪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고통에 대해 누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러한 일을 왜 겪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나 해결을 제시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익숙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여준 사람도 있다. 정도전은 고려 말 중앙 권력자들과의 갈등으로 9년여를 유배와 유랑으로 지내야 했다. 9달도 아니고 9년이라는 긴 세월이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낸 것일까. 그가 유랑을 마치고 함주 막사로 이성계를 찾아간 것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정도전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반드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정도전인들 정계에서 축출된 좌절, 자신을 배척한 중앙 권력자에 대한 원망, 분노가 왜 없었을까 싶다. 그의 속마음을 깊이 알 수는 없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꿈이 있었다. 그는 꿈을 품고 있었기에 ‘홧병’ 날만한 좌절과 분노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겪은 모든 ‘화’를 덮어 버릴만한 가치를 지닌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였기에, 9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문득 돌이켜 보니 나야말로 행복한 상상, 기분 좋은 꿈을 상실한 채 무거운 짐을 지고 버텨내듯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삶의 여정은 꽃길도 아니고 탄탄대로일 수도 절대 없다. 그럴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수시로 찾아온다. 어떻게 평생의 삶이 운 좋게 아무 일도 없이 산책하듯 꽃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부랴부랴 꿈을 챙기고 보니, 현실의 길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내 마음의 길에 꽃이 피기 시작함을 느낀다. 이 봄날의 꽃망울처럼 작은 꽃들이 조금씩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다.
지금 이 길을 걸으며 꾸는 꿈이, 지나온 시간을 어루만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를 소망한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일어난다. 이제 걷는 나의 길은 꿈길이기 때문이다.
<꿈길을 걸으며>
발밑에 깨진 사랑
사그라지게 놔둬요
나를 외면한 사람
어딘가에서 잘 살겠죠
내 마음 몰라준 사람
내 마음은 내가 감싸요
이제 꿈을 꾸어요.
꿈을 품으니
삶의 여정이 꿈길로 변해요
글/그림 Seon Choi
※ 중종과 김광철의 대화 출처는《조선왕조실록》
당시 명 11대 황제인 세종 가정제(1521-1567)는 최악의 폭군으로 지칭될 정도였다. 기록의 진 황후(재위 1522. 9. 28.-1528. 10. 9.)는 두 번째 황후로 6년 동안 황후위에 있었고, 세 번째 장 황후(재위 1528. 11. 28.-1534. 1. 6.)는 6년 만에 폐위되어 쫓겨난 뒤 병사했다고 전해진다.
※ 조박, 이천계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하고 귀양형을 당했지만, 뒷날 사후에 관작을 돌려받고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