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신비를 생각하며 -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삼월은 ‘봄 춘’을 더하여 예로부터 ‘춘삼월’이라 부른다. 어느 한 계절인들 의미 없는 시간이 있을까 싶지만, 혹독한 겨울을 보내며 맞는 봄은 생명이 살아나는 환희의 계절이다. 그 반가움에 유달리 삼월에는 앞에 다시 '봄 춘'(春)을 더하여 춘삼월이라 하는가 보다.
옛 문헌에 보이는 춘삼월은 지금의 양력으로 하면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 무렵이다. 양력 3월보다 음력의 3월은 계절적으로 보다 따뜻한 봄이다. 물론 겨울에도 생명은 살아있었다. 나무는 차가운 땅 속에 뿌리를 내려두고 저장한 물로 버티어 냈다. 개구리, 뱀, 박쥐, 곰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대사 활동을 낮추어 겨울을 나는 ‘겨울잠’이라는 자연의 신비로 버티어 낸 동물도 있다. 날이 풀리면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것 같던 온갖 생명이 활개를 치며 나타난다.
그러한 봄날의 환희를 ‘삼월’이라고만 하기는 너무 아쉬워 ‘봄봄’이라 외치듯 ‘춘삼월’이라 노래했다고 상상해 본다. 봄날의 그 환희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복숭아꽃 피고 물 출렁이는 춘삼월 기다리게나."
"푸른 버들 춘삼월에 다시 만나기 약속하세."
"일 년 중에 가장 좋은 춘삼월 호시절일세."
"춘삼월 좋은 시절 함께 만나서... 시와 술로 좋은 풍경 즐겨 보세나."
이처럼 노래한 ‘춘삼월’은 달력의 3월을 일컫는 말이지만, 가장 좋은 시절을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혹한기를 넘기고 생명으로 다가 온 춘삼월은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세상사가 춘삼월일 수만은 없는 이치이다.
급박한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새 왕조를 세워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 그가 처음 맞은 춘삼월의 기록을 보면 세상은 여전히 번잡스러웠고, 날씨도 마찬가지였다. 벌레가 송악의 소나무를 갉아먹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3월 24일), 여러 지역에서 화재가 났으며, 역질이 돌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3월 29일).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눈마저 내렸으며, 나무에는 얼음이 얼었다는 기상이변도 있었다(3월 3일).
왕자의 난을 두 번이나 감행하고 마침내 왕위에 오른 태종의 춘삼월도 마찬가지이다. 우박이 여러 차례 쏟아져 내리고(3월 11일), 영흥 지방 냇물이 10여 리나 말랐다가, 하루 만에 다시 흘렀다는 이변이 보고되었다. 태종은 하륜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눈물을 흘리며 파하였는데, “큰 변은 피할 수 없다"라고 뇌이며 근심하였다고 한다.
COVID-19 이후 두 번째 맞는 춘삼월이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나무 가지에 생명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 길을 산책하면서 어김없이 찾아온 춘삼월의 환희에 심장이 크게 뛴다.
하지만 어제 갔던 카페가 오늘은 '폐업' 했다는 팻말이 붙어있다. 색연필이며 도화지 등을 사러 자주 갔던 곳도 불이 꺼지고 문에 자물쇠가 걸려있다. 픽업만 가능하다고 써 붙인 식당은 어두컴컴한 매장 한 구석에서 요리사 복장의 중년 아저씨가 무거워 보이는 손길로 초밥을 만들고 있다. 산책 길에 만난 외로움에 지쳐 보이는 노인이 거리를 둔 채 마스크 너머로 주름진 인사를 건넨다. 터져 나오는 꽃봉오리의 신비에 취하는 이 춘삼월은 여전히 역질이 돌고 기상이변이 일어나는 혹독한 시간이다.
고통은 참으로 잔인한 신비이다. 역사에는 끔찍한 고통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가슴 아픈 희생과 참혹한 상처가 남았지만 사람들은 또 극복해 내었고, 살아 내었다. 그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빛나는 가치를 이루어냈다.
개인적인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다시는 기억하기도 싫은 고통이었어도, 그 고통 때문에 깨달은 소중함이 또 있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며 얻은 유익도 나름 있었다. 혹독한 이 춘삼월에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글 제목 그림 : 신윤복, 연소답청(年少踏靑), 간송미술관 소장.
진달래꽃 피는 봄에 젊은이가 파랗게 난 풀을 밟고 거닌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