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박색 춘향의 사랑과 집착

-박석고개 춘향의 손에 쥔 숯덩이

by SeonChoi


‘춘향’이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종류가 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무렵 등장한 판소리 ‘춘향가’, 여기에서 파생되어 대략 100여 종 이상의 서로 다른 판본(이본)의 ‘춘향전’이 전해진다.


한 가지 당연하지만 그래도 꼭 기억할 사실은 춘향 이야기는 설화이며 판소리이며 문학작품이라는 점이다. 실제의 역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양반, 사또, 장원급제, 암행어사 등은 모두 역사에 실재했지만 춘향 이야기는 설화이다. 왕자, 무도회, 계모, 평민 여자, 쥐를 비롯한 동물들이 실재했지만 신데렐라가 역사는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평민 여성이 실제로 호박마차를 타고 유리 구두를 신고 무도회에 가 왕자와 춤을 추었다고 믿을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일단 역사에서 이몽룡은 절대로 암행어사나 남원부사로 남원에 갈 수 없었다. 조선은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 부임할 수 없는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던 사회였기 때문이다(상피제).


판소리 춘향전의 근원이 된 설화로 전해내려 지는 박색터 설화(박석고개 설화, 박색 고개 설화 등)가 있다. 나이가 서른을 넘긴 천하의 박색(못생긴 여자에게 쓰는 말)인 춘향의 이야기다. 설화의 공간은 전라북도 남원시에 소재한 박색 고개이다.


춘향은 얼굴이 추해서 삼십이 넘도록 통혼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어느 날 빨래를 하다가 이도령을 본 춘향은 사모하는 마음을 품어 병까지 얻었다. 보다 못한 월매가 방자를 꾀여 이도령을 광한루로 유인하였다. 월매는 향단을 말쑥하게 꾸며 광한루로 보냈다. 향단에게 반한 이도령은 술자리를 가졌고, 향단은 계속 술을 권하였다. 마침내 술에 취한 이도령을 월매집으로 모셔 춘향과 잠자리를 하게 하였다. 잠에서 깨어 박색 춘향을 본 이도령은 월매집을 떠나와 다시는 춘향을 찾지 않은 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버렸다.


춘향은 이도령이 떠나간 고개에 올라 하염없이 이도령을 기다리다 못해 목을 매어 죽었다(상사병에 걸려 죽었다고도 한다). 남원부내 사람들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이도령을 기다리던 고개에 그녀를 장사지내 주었다. 그 뒤로는 <전설의 고향>에 오를 법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통시대에 흔히 있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이다. 사실 설화에서 이몽룡은 춘향을 좋아한 일이 없었다. 요즘으로 하면 춘향이 이몽룡에게 집착함이다. 사랑의 포장지를 뒤집어쓴 ‘집착’은 사랑만큼이나 흔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뉴스에서 ‘집착’ ‘스토킹’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소식을 자주 접한다. 기어코 범죄로 이어진 경우만이 보도된 것이니, 실제로는 훨씬 많은 경우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사람의 마음을 집착으로 얻을 수 있다면, 사랑이 얼마나 쉬우랴. 그 누구의 마음도 나의 집착으로 얻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서고, 벗이 곁에서 떠나가고, 심지어 자식이 멀어져도 나의 노력으로 그 마음을 잡기는 어렵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종종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이몽룡을 만나기 전부터 춘향은 춘향이었지만, 이제 춘향은 ‘몽룡의 여인’이 아닌 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었다. 이몽룡을 만나기 전부터 춘향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춘향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몽룡과의 관계 속에서만 찾으려 했다. 그 집착은 결국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평생을 사랑할 것 같은 사람이 떠나면 세상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 이전도, 떠난 지금도 나는 나로 존재함이다.


세상에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는지 모른다. 적당히는 마음에 안 들어하고, 때로는 단점만 크게 보기도 한다. 다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사랑으로 상대방의 부족함과 허물을 덮을 수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여전히 허물투성이의 나를 이제야 나도 간신히 존귀한 존재로 사랑하며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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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Seon Choi


※ 설화는 디지털 남원문화대전의 <박색터 설화> 참고.

http://namw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namwon&dataType=01&contents_id=GC0060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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