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문. 리조트와 관광지가 조밀하게 들어선 휴식과 소비의 결절점이다. 이 밀집된 공간 구조 안에서 ‘더클리프’는 절벽이라는 지형의 특징을 전면에 드러낸다. 단순히 경치를 제공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디에 놓였는가’라는 위치 감각 자체를 주요 설계 요소로 삼는다.
더클리프와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5살 여름, 졸업을 앞두고 중문 조선호텔 인테리어 현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회식 자리에서 처음 이곳을 방문했다. 먼지 묻은 작업복 차림의 현장 직원들과 마주한 풍경은, 힘들었던 하루를 단숨에 덮어주는 위로였다. 일반적인 바다 뷰 카페와는 다른 수직의 시야, 절벽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감각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과 꼭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작년 여름 여자친구와 다시 이곳을 찾으며 그 다짐을 지켰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이국적인 인테리어다. 이비자나 지중해 해변의 라운지를 연상시키는 화이트톤 마감, 서핑 문화를 암시하는 소품과 굿즈, 야자수와 트로피컬 식물들이 조성한 조경이 컬러풀하게 어우러진다. 실내는 다채로운 조명과 리드미컬한 음악으로 채워져 있지만, 진짜 공간의 중심은 실외에 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이미지 대부분도 넓게 펼쳐진 야외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처음 실내에 들어섰을 때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눈이 머물렀지만, 야외로 나선 순간 인식이 전환된다. 절벽 위로 펼쳐진 야외 공간을 마주하면서 컬러풀한 실내는 도입부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된다. 좌석 대부분은 야외에 배치되어 있고, 공간 전체는 오롯이 바다를 마주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간 배치만으로 뷰가 이곳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높이를 감각하는 체험은 비용과 이동을 동반한다. 적지 않은 금액과 최소 몇 시간을 들여 전망대에 올라가거나, 열기구에 탑승한다. 하지만 더클리프는 그 어떤 장치 없이 카페 입장과 동시에 시야의 전환이 시작된다. 절벽 위에 놓인 구조 덕분에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 고도 위에 놓이게 되고, 감각의 레벨이 자연스럽게 바뀐다. 더클리프에서의 '머무름'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공간과 고도, 빛이 함께 빚어낸 다층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야외로 발을 딛는 순간, 자연스레 시선은 절벽 아래로 향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수직으로 툭 떨어지는 절벽. 그 아래 바다가 있고,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실루엣이 있다. 전국 곳곳에 오션뷰가 훌륭한 대형 카페는 많지만, 대부분이 수평선 위를 바라보는 구조라면 이곳은 드물게도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야를 제공한다. 특히 서퍼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적인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라이브 장면이 된다.
서핑이라는 활동이 주는 분위기는 독특하다. 다른 스포츠가 근육과 움직임을 통해 무언가를 ‘시도’한다면, 서핑은 '기다림'에 가깝다. 노을 아래서 서핑보드 위에 떠 있는 여유로움, 파도를 기다리며 자연에 녹아든 느슨한 리듬은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감각에도 영향을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처럼 감각을 풀어짐을 느낀다. 우리의 감정은 어느 순간 바다의 잔잔한 리듬과 함께 흘러가기 시작한다.
해가 질 무렵, 더클리프는 진가를 드러낸다. 빛이 천천히 수평선을 따라 기울고, 바다는 점점 짙은 색으로 변한다. 절벽이라는 고도 차는 태양의 위치 변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멈추고, 조용히 시선을 고정한다. 찰나의 일몰순간을 눈에 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수평선의 색변화를 바라보며 마음의 온도 또한 높아진다.
더클리프는 예쁜 경치를 소비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풍경이 감정을 지휘하고, 사람과의 관계 리듬을 조율하는 장소다. 그 조용한 동기화의 순간은, 바람처럼 천천히 다가와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