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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컴플렉스, 인사동 밤의 온도를 높이다.

by 데이트베이스 Mar 31. 2025

전통과 트렌드가 교차하는 안국역 인근 인사동 쌈지길. 북촌과 인사동 사이의 전시·상업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간이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그 흐름은 종로나 북촌으로 옮겨가곤 한다. 관광과 상점으로 북적이던 쌈지길은 눈에 띄게 조용해지고, 주간 활동을 중심으로 설계된 거리 위로 저녁의 온도가 빠르게 식어간다. ‘뮤직컴플렉스’는 인사동 야간의 공백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곳은 쌈지길 거리 안쪽, 복합문화공간 ‘안녕인사동’ 건물 5층에 자리한다. 낮은 건물들이 늘어선 전통 거리 위로 비교적 큰 규모로 들어선 이 건물은, 작은 마당을 앞에 두고 거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이는 주변의 낮은 건물에 대한 배려다. 파사드 또한 한옥의 건축적 언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전통과 단절되지 않도록 구현되었다.

정자의 왼편, 거리와 건물 사이. 그 여백이 낳은 작은 마당.


상가 건물 내부로 진입해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5층까지 오르는 동안에는 인사동 특유의 나즈막한 분위기가 점차 옅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뮤직컴플렉스’는 쌈지길 전통의 여운 위에 현대적인 감각이 덧입혀지는 지점에서, 감각의 전환을 또렷하게 만들어낸다.


내부는 ‘ㅁ’자 평면을 따라 청음룸, LP 진열대, 바(카운터), 스크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장하자마자 시선을 끄는 프라이빗 청음룸을 지나면, LP들이 길게 진열된 벽면과 마주 앉는 소파들이 펼쳐진다. 다른 벽면에는 불멍과 같이 편안하게 보기 좋은 영상을 투사하는 스크린이 있고, 중앙에는 청음 테이블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자칫 분산될 수 있는 레이아웃을 정돈한다.

뮤직컴플렉스 내부. 출처 : 뮤직컴플렉스


인테리어는 레드 톤으로 설계됐다. 보통 실내의 포인트 색상은 제한된 면적이나 컬러 조명으로 표현되지만, 이곳은 벽체와 천장까지 과감하게 전부 레드로 마감했다. 그 위에 낮은 조도를 얹음으로써, 강한 색감이 가볍지 않게 유지되고, 무드 또한 단단하게 조율된다. 레드는 시선을 끌기보다 분위기를 정의내리며, 어두운 배경은 청각에 집중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청취 – 주문 – 대화’의 동선이 강제되지 않는다. LP를 고르며 앉아 듣고, 자연스럽게 음료를 주문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다시 음악에 몰입한다. 이 유연한 흐름은 공간을 ‘음악 재생소’가 아닌, 감상과 교류의 장소로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헤드셋은 각 테이블마다 비치돼 있다. 깊이 있는 청음을 위해 착용했다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땐 소리를 스피커로 전환하고 목에 걸치면 된다. 이 작은 전환은 개인에서 관계로, 몰입에서 공유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대부분 2인용 중심으로 구성된 중앙의 좌석은, 이 곳이 데이트 코스로 적절한 선택임을 말해준다.

출처 : 뮤직컴플렉스


시각적 요소 또한 섬세하게 조율되었다. 키치한 소품들과 입구의 캐릭터 인형은 공간에 위트를 더하며, 일반적인 LP바 특유의 권위감을 걷어낸다.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장르별 라벨링과 추천 리스트, 직원의 큐레이션 등 접근성 높은 경험 방식이 설계되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커피와 주류를 함께 운영하는 복합적 구성이다. 낮에는 카페처럼, 밤에는 맥주과 함께 무드를 즐길 수 있는 바로서 기능하며, 이 경계 없는 운영 방식은 일상과 비일상의 전환을 부드럽게 만든다.

여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날, 이곳에서 로맨틱한 분위기의 방점을 찍었다.


‘뮤직컴플렉스’는 음악이라는 감성적 콘텐츠 위에, 젊은 감각의 색채와 구조를 얹어 인사동의 밤을 다시 쓰는 중이다. 머무는 방식은 자유롭고, 대화와 몰입은 유기적으로 오간다. 이질적이지 않게 새로운, 감각적으로 다르되 인사동에서 낯설지 않은 공간. 오랜 산책 끝에, 대화를 이어가기 딱 좋은 밤의 온도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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