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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Sep 04. 2022

빨래하러 가는 길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이파리가 나무에서 멀어지는 일을 가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파리가 나무와 첫인사를 하게 되는 시간이 '봄' 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가을을 열어 보여준 글 안에서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봄 하루를 뒤척이던 이파리가 나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연둣빛 숨을 내쉰다. 부드러운 향기와 적당한 온기를 지나 여름을 향하면, 몸은 바삐 커지고 마음은 삐질삐질 땀을 흘린다. 


초록의 숨을 내쉬며 눈은 감고 귀를 열어본다. 팽팽히 당겨진 줄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지의 어머니가 맞추어 놓은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면 햇살과 바람과 비를 동그랗게 빚어 보름달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시인이 말했던 ‘ 이파리가 나무에서 멀어지는’ 가을을 맞는다.


5월 중순, 이메일 하나를 받았다.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지나간 생각은 몇몇 브런치 작가님들이 받았다는 '그것'이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 자기소개했다는 그것이 내게도 왔구나. 별생각 없이 내용을 클릭해서 보았더니 브런치에 썼던 나의 이름은이라는 글이 마음에 들어 ‘피정’에 관한 글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내 글이라고 말씀하시는 제목을 더듬거리며 찾아 읽어 보았다.  ‘헉... 이걸 내가 썼어?’ 급하게 마무리하며 끝내긴 했지만, 그 글이 마음에 드셨던 이유 몇 가지에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300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포스팅하면서 조금씩 늘어갔던 글 근육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되었다. '나의 이름은' 만큼 쓸 자신이 없었다. 그 마음 그대로 연락을 주셨던 분께 답장을 드렸다. 긴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내 글은 생활성서 8월호에 실렸다.


종이에 인쇄된 나의 글을 읽는 경험은 세 번째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곳 생활에 대해 써 보았고, 매달 보석 칼럼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때는 몰랐던 경험을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내 글에 신경을 써 주고 챙겨주는 것. 담당 에디터는 친절했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의견을 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 첫 부분에 나오는 ‘공주님’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도 좋은 디자인을 위해 가장 마음이 가는 부분도 때에 따라 과감히 없애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에디터와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주고받으며 내 글이 마무리되는 과정, 그것은 마치 ‘이파리가 첫인사를 하는’ 봄을 마주하는 듯했다. 브런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맞이하지 못했던 어느 봄날의 하루였다. 아래는 적당한 햇살과 꽃 내음이 바람이 되어 내게 와 주었던 선물이다. 





빨래하러 가는 길 


초등학교 때 읽었던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중에서 내 머릿속 골목길을 지금도 걸어 다니는 캐릭터 하나가 있다. 마치 가발을 쓰듯 얼굴을 매일 갈아입는 공주님이다. 당시 나는 얼굴을 번갈아 입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보니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그 공주’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일은 행복한 시간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돈을 벌어 입고 먹으며 살아가기 위해 만나는 관계들은 녹록지 않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가면 하나를 쓴다. 오늘과 어울릴 것 같은 그 얼굴과 함께라면 나도 프로사회생활러가 될 수 있다. ‘그 공주의 얼굴’과 ‘나의 가면’의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눈물과 큰 한숨들이 닿은 나의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눅눅해진다는 것이다. 45도로 올라간 웃음 근육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곳’으로 출발한다.


내가 살고 있던 곳에서 160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수도원이 있다. 구글링이 찾아준 보석 같은 장소다. 잠시나마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하늘과 땅 어느 즈음에서 움직이는 여러 생명체 중 하나로 지내다 올 수 있는 곳이다.


오랜만에 계획한 일들에는 늘 방해꾼들이 많다. ‘신나요’라는 감정의 크기가 커질수록 삐끗할 확률은 비례한다. 내가 처음 ‘이곳’에 방문한 날에도 그러했다. 금요일, 오랜만에 칼퇴근을 하고 출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건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다. 덕분에 체크인하려 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은 밤 11시까지 차를 달려야 했다.


신호등도 없는 시골로 접어들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빛에 의지하며 차는 쭈뼛거리며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내비게이션도 버퍼링이 걸리고 내 마음도 작아져만 가고 있을 때 수도원의 팻말이 보였다. 모두가 잠이 든 밤에 조용히 차에서 내려 사무실 문을 열었더니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를 닮은 수사님께서 친절히 맞아 주셨다. 너무 늦게 도착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나이가 많아지면 잠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주시며, 방 열쇠와 손으로 그려 놓은 지도, 그리고 하루 일정 이 정리된 시간표를 주셨다. 내가 지낼 방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쳐다보는 눈이 아플 만큼 많은 별들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한꺼번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야말로 피곤함도 졸음도 사라지면서 잠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왁자지껄한 별들의 소리를 피해 거실로 갔다. 수도원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자 벽난로와 피아노와 함께 차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장소다. 처음 만난 그 공간에서 나는 따뜻하고 편안해지면서 마음속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아마도 “Warm Welcome”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9,603km 떨어져 있는 엄마의 손길을 기억했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며 다독거려 주는 엄마의 손길과 같은 무언가에 이끌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대침묵이 있는 수도원에는 사람 외에는 모두가 수다스럽다. 해님의 이마가 보이기도 전에 작은 새들이 목청 높여 떼창으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담당 수사님의 종소리로 모든 일정이 열렸다 닫힌다. ‘원하는 사람’은 수사님들의 하루 일정에 맞춰 미사와 기도 시간에 참석할 수 있다. 강요하는 그 어떤 것도, 이메일과 메시지 도착 소리도 없다. 


편안한 신발을 신고, 산에 올라가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호숫가에서 육아에 힘들어하고 있는 오리 엄마들을 쳐다보기도 하고, 정말이지 꼼짝도 하지 않는 자라의 꼼지락대는 모습을 한 번 보겠다고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수도원에는 장기 투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몸을 다쳐서, 또 어떤 이는 마음을 다쳐서 찾아든다. 치유를 위해서, 쉼을 위해서, 또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다. 언젠가는 나도 이곳에서 오랜 방학을 지내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는 식사를 담당하는 수사님의 팀원이 되어 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하고 싶다. 종소리가 날 때마다, 제단 좌우로 앉아 계시는 수사님들을 마주하며 기도에 참여하고, 미사 때에는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고, 말씀을 봉헌하는 기회도 갖고 싶다. 


뒤돌아보니, 수도원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손빨래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이 아무개가 던진 검은색 덩어리도, 김 모모 씨가 뱉은 칙칙한 응어리도, 조잘조잘 까끌거리는 밥풀이 붙은 내 옷과 가면을 커다란 그릇에 담아 두드리며 깨끗하게 빨았다. 그리고는 빨랫감들을 탁탁 털어 햇살 좋은 한편에 널고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이 발그스름해지면, 햇살을 담고 빛을 품은 나를 데리고 다시 세상으로 향했다. 


얼마 전 수도원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팬데믹으로 닫았던 수도원의 문을 열고 다시 피정을 시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늘 그랬듯 나의 빨랫감을 가지고, 나의 변화된 시간의 첫 단추를 잘 채우기 위한 소망을 담아 피정에 참여하려고 한다.






1. 이파리가 나무에서 멀어지는 일을 가을이라 부른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쓰는 기분'에서 만났습니다.)


2. 생활성서는 내년이면 마흔 살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만드는 가톨릭 신앙 그리고 세상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월간지라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이곳을 클릭 -> 생활성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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