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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바라기 Mar 23. 2022

변화하거나, 도태되거나

[문구바라기] 브랜드 육아일기 02_2021.02

"사장님... 저희 폐점해요...
 물건 좀 철수해 주세요"

2020년 여름, 한통의 전화가 왔다.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힘겨워하던 거래처가 폐업을 결정한 것이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많은 거래처들이 철수를 요청하거나 거래 종료를 통보해 왔다.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문구업계는 어려워진다.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온라인 개학'은 상상도 못 한 새로운 신학기 풍경을 만들었다. 문구업계의 '신학기 특수'는 사라졌고 이는 곧, 학교 앞 문구점의 폐업을 가속화시켰다. 더불어 비대면 시대가 등장, 쿠팡과 스마트 스토어 등 온라인 플랫폼 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결국 '오프라인 문구점'의 경쟁력은 한없이 약해졌다.


우리 사업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주 거래처였던 '중소형 마트' 들이 쿠팡에 뒤쳐지며, 입점 고객이 줄어들고 매출 하락을 버티지 못해 폐점이 가속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이소와 학교 준비물 제도로 이미 몸살을 앓던 '학교 앞 문구점' 들도 온라인 개학과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로 끝내 폐업하는 거래처가 늘어났다. 소매점이 활성화되어야 우리와 같은 도매점도 같이 활기를 띄는데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임시방편으로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익숙했던 사업 구조가 쉽게 온라인으로 변화 하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코로나와 함께 스마트 스토어 시장에 다수의 사업자가 뛰어든 상황이라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남들과 같이 단순히 유통 채널을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가진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진짜 문제를 찾아라


먼저 우리의 고객들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의 사업형태는 '문구 도매업'으로 중소형 마트와 동네 문구점과 같은 소매점들이 1차 고객이다. 이들은 이미 겪고 있던 위기 속에 코로나 이슈까지 더해져 '고객 감소→매출 감소→폐업 증가'로 이어졌다. 이는 우리 사업에 '거래처 매입금 감소 + 거래처 수 감소'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현재 우리 사업의 가장 큰 고객은 '중소형 마트'이다. (20년 12월 말 기준, '마트 7' : '동네 문구점 3' 매출 비중을 이루고 있었다) 코로나 이슈로 로켓 배송, 신선 배송 이용이 증가하며 중소형 마트 이용 고객이 대폭 감소했다. 새로운 위기 속, 동네 중소형 마트들은 '온라인 배송 지연''오늘 당장 필요한 물품에 대한 배송'을 원하는 고객 니즈를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 이들은 '동네 배송 서비스'를 도입하여 발 빠르게 대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동네 배송'에 문구류는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대부분 신선식품위주의 배송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상품들은 중소형 마트 내부, 일부 공간에 진열되어 있다. 우리 입장에선 고객들이 마트에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문구류를 접하고 소비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 소비 패턴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사업의 마트 영업 경쟁력은 점차 낮아질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우리는 또 다른 고객 '동네 문구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든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동네 문구점을 이용하는 고객이 왜 줄어드는지부터 생각해 보았다.(지금부터 언급하는 문구점들은 알파문구, 오피스디포 등 과 같은 대형 문구점이 아닌 소규모 문구점을 일컫는다. 대형 문구점은 우리의 주 거래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확대되며, 아날로그 문구류의 사용이 예전보다 줄어든 건 맞지만, 여전히 문구류는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단지 예전과 다르게 문구를 소비하는 곳이 달라졌다. 우선 학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대체 점포들이 많이 생겼다. 학기가 시작되면 대형마트에서 신학기 용품들을 구매하고, 평소엔 다이소를 이용한다. 아니면, 쿠팡이나 스마트 스토어 등 쇼핑몰에서 구매를 하기도 한다.


결국 문구류에 대한 소비는 여전히 존재 하지만, 단지 구매하는 장소가 문구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들은 문구점이 아닌 다이소나 대형마트로 옮겨간 것일까?


대게들 보통 동네 문구점의 부진한 원인을 다이소 보다 뒤처지는 가격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동네 문구점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고객들이 동네 문구점을 방문할 동기가 없었다.

(가격 경쟁력이 문제라면, '고가의 문구 편집샵' 들에 열광하는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 개만 사고 카드 결제하는

   고객에게 눈치 주는 문구점 대신,

   눈치 없이 쇼핑할 수 있는 다이소.


 제품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렵고

   정리가 엉망인 문구점 대신,

   깔끔하고 쇼핑하기 편리한 다이소.


 유행이 지난 제품을 판매하는 문구점 대신,

   요즘 핫한 트렌디 제품 구매가 가능한 대형마트.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질 뿐이다


[책 :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혁신해야 하는데, 지난 몇십 년 동안 동네 문구점들은 변화하지 못했고, 다이소와 학용품 지원제도 때문에 어려워졌다고 불평만 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매장으로 고객들이 방문할 이유를 만들지 못한 걸 자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결국, 우리가 내린 답은 기존의 문구점 형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령, 화장품 산업만 살펴보아도 시대에 맞게 로드샵의 형태가 변화해 왔다.


[1세대] 동네 종합 화장품 - 휴플레이스, 보떼

⊙ [2세대] 원 브랜드샵 - 이니스프리, 더 페이스샵

[3세대] H&B스토어 - 올리브영, 롭스

 [4세대] 편집샵 - 시코르


문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문구점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고객들의 눈높이와 수준, 그리고 현재의 시대 흐름과 니즈에 걸맞은 매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문구점을 구상하던 중

21년 2월, 서울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무인 문구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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