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뚜 Jun 19. 2021

난임 일기

#7

이제껏 살아가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해서 대학교에 갔다. 막상 대학에 가보니 입시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 내 앞에 다가왔다. 입시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고, 공부뿐 아니라 다른 자격증 및 스펙을 위해서 공부해야 했고 여러 경험을 쌓기 위해 교우관계, 학생회 및 동아리 활동 또한 해야 했다. 그리고 한 해 한해를 선택의 연속 속에 살았다. 그래도 이 세상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행운이 나에게 꼭 적용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첫 번째 좌절이었다. ‘서류 탈락’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탈락을 했다. 서류라도 합격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가서 기계처럼 자기소개서를 썼다. 그럼에도 내가 왜 합격이고, 왜 불합격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유 모를 탈락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자존감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그래도 걱정하고 계신 부모님에게도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서 ‘엄마 나 낙엽이라고 불러줘. 정말 우수수 떨어진다~’ 엄마는 속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재미있어하셨다. 그렇게 도피성 대학원을 선택했다. 대학원 생활도 너무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가 돼서 나름 소개팅도 많이 하고 노력을 한 결과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됐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결혼도 내가 나름 열심히 우물을 판 결과 좋은 사람, 좋은 만남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의 ‘최선을 다하자!’의 모토를 바꿔준 일이 생겼다. 결혼 2년이 돼도 아기는 생기지 않았다. 이건 취업보다 더 막막했다. 도대체 애기가 생기려면 뭘 노력해야 되나? 취업을 위해서는 그래도 나름 스펙을 쌓고 하루하루 늘어나는 자기소개서 스킬을 보며 나름 글이 좋아지고 있다고 뿌듯하던 시간도 있었는데, 임신 스펙은 어떻게 쌓아야 하는 거지?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정말 막막했고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나름 임신에 좋다는 한약도 먹고, 한의원도 찾아가서 난임치료도 받아보고 난임 검사도 받아봤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껏 그래도 최선을 다하면 못할 것은 없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도 안된다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임신이다. 그동안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피임을 하며 조심했던 나 자신의 세월을 후회했다. 그냥 처음부터 계속 시도해볼걸.. 이렇게 세월이 흐를 줄 알았으면 하루라도 젊을 때 시도해볼걸 그랬나 하는 부질없는 후회들을 했다.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거나, ‘나 때문이야’라고 말하거나. 나는 주로 이유를 너에게서 찾는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임신의 과정에서는 ‘너 때문이야’가 참 안 되는 것 같다. 온전히 내 탓으로 돌리게 되니 스스로의 감정이 컨트롤이 안돼서 너무 힘들었다. ‘마음이 편해야 애가 잘 생기지’라고 하는 말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이 세상에 마음이 불편하고 싶어서 불편한 사람은 없을 텐데 꼭 이 상황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들고, 그것 또한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아기가 안 생긴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취업은 불공정한 이 세상을 탓했다. 그런데 임신이 안 되는 건 무엇을 탓해야 할까? 다른 무언가를 탓하지 않으면 계속 스스로를 탓하게 돼서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서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 또한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참 편한 일인데 스트레스의 상황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그럴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게 있어. 그냥 상황에 맡기자.”라고. 나도 누군가 나처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꼭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보다. 꼭 애쓰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인 것 같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면 나에게도 예쁜 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난임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