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두 번의 인공수정이 실패했다. 내가 피검사를 갔을 때 나를 시술해주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휴가 중이셔서 다른 분께 결과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생리 3일째 병원을 찾았고, 시술 이후로 선생님을 처음 보는 날이었다. 뭔가 시술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선생님의 얼굴을 보는 게 괜히 민망했다. 3차 시술을 어렵게 결정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선생님을 봤는데 나를 본 선생님은 결혼기간도 그렇게 길지 않고, 다른 것들도 다 괜찮고 좋은데 왜 임신이 되지 않는지 원인을 모르시겠다며 이번(3차)에도 안되면 한 달의 휴약기를 가진 후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물론 이번에 되면 너무 좋지만'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셨겠지만 나에게 시험관 시술이라는 것이 너무 큰 일처럼 다가왔다. 사실 인공수정의 성공확률을 15-20프로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반면, 시험관은 신선배아의 경우 45프로 이상이고 그리고 배아가 좋으면 동결도 해서 동결배아는 50프로 넘는 확률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고 인공수정은 수정이 됐는지, 건강한 배아가 만들어지는 건지, 잘 착상은 된 건지 원인이 불분명한다면 시험관을 통해서 원인을 찾으시는 분들도 있으니 너무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말과 말 사이에서 그렇게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말이 나에게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인공수정에 실패한 것이 내 탓도 아니고, 선생님 탓도 결코 아닌데 왜 나는 내가 죄인이 되어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어야 그 상황이 끝난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내가 의지할 누군가는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임을 겪으며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돼. 그래야 애기가 생기지'라는 말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을 꼭 불편하게 먹을 거야!'라고 결심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음을 편하게 먹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나도 당장 그러고 싶은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에 나의 죄책감만 추가될 뿐이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마음을 편하게 먹지 못해서 일까?라고. 난임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죄책감의 상황들이 정말 많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신념인걸, 이것이 인지적 오류라는 것을 내가 무엇보다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편해지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먹고 싶은 커피도 마음껏(?) 먹어보고, 밀가루도 먹었지만 먹은 후 찾아오는 후회, 내가 이것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나중에 나를 탓하지 않을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오늘도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불안할지언정 희망을 잃고 싶지는 않다. 희망과 불안이 공존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내 마음이 아닐까 한다. 점점 실패가 거듭될수록 희망과 불안이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이번에는 꼭 될 거야!'라는 마음이 점점 줄어들고, '이번에.. 될까..?'라는 마음이 점점 내 마음에 커져간다. 아이를 낳는 것이 꼭 행복의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남편과의 불화도 아예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고, 우리가 가는 길이 반드시 꽃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