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번엔 야근을 하는 날들이 꽤 많아 피곤했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야근을 했던 것 같다. 뭐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병원에 가는 날이 돼서 초음파를 보는데 왼쪽 난자 쪽에는 아예 반응이 없고 오른쪽 난자 쪽에만 성숙된 난포 2개와 덜 자란 난포 3개 정도가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시술일을 정하고 집으로 갔다.
인공 수정 시술 당일 사실 남편도 나도 많이 지쳐있는 상황에서 3차 인공수정 시술을 했다. 아침에 병원에 가서 정자를 채취하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끝내고 나온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서 지친 기력이 느껴져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할 만한 말들을 생각해봤다. ‘오늘 점심에 무얼 먹지?’ , ‘카페 가서 뭐 마실 거야?’ 등 멀리 있는 행복보다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와 있고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당장의 행복한 일들을 생각해봤다. 시술을 마친 우리는 카페에서 에이드를 마셨고 닭갈비 집에 가서 닭갈비를 먹었고 추러스를 사 먹으며 지친 우리를 위로했다. 저번 시술을 하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조심할 것’ 위주로 나를 통제했다면 이번엔 좀 더 자유롭고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쪽으로, 그리고 너무 ‘이번에는 꼭 돼야 해!’라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올인하지 않아야겠다가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지난번엔 ‘시술이 어떻게 될 줄 몰라서’ 백신 예약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면, 이번엔 그래도 일단 해놓자! 해놓고 안 생기면 맞고 생기면 임산부니까 못 맞는 거니까!라고 생각하며 예약을 했다. 그리고 원래 커피는 입에도 안 댔는데 내가 커피만 빼고 몸에 안 좋은 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먹고 있는 것 같아서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너무 스트레스받을 땐 ‘디카페인 커피’ 정도는 마시자! 였다. 사실 병원에서도 카페인을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고, 그냥 평소처럼 생활하되 너무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지난번엔 안정을 취하겠다고 회사를 안 갈 때 집에 있는 동안은 거의 누워 있고 집안 일도 안 한 것 같다. 이걸 이해해준 남편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고 이번엔 그래도 집안일도 하고 퇴근하고 가벼운 산책 정도는 했다. 너무 시술에 몰두한 나머지 2-3kg 정도 찐 나 자신을 더 이상 방치해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금기어였던 ‘이번 시술이 잘 안되면’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시술이 잘 안되면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어딜 가면 좋을까? 하며 상의를 하는 것 또한 꽤 행복한 일이었다. 시술을 하면서 너무 우울했던 내 모습이 싫었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위축되고 불안한 내 모습이 싫었다. 병원에 다니며 아기를 만날 희망이 생긴 거니까 행복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사실 그게 어려운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병원을 다니면 나는 롤러코스터처럼 내 마음이 왔다 갔다 하겠지만 그래도 행복해지려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해지려고 행복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 잘 살았다면 그게 행복이니까! 식상하지만 행복은 저 멀리에 있는데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