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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므라이스 Jan 24. 2024

인생의 허들은 자신이 정하는 거다

전문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대학도 다들 간다고 하니까 간 거라, 그다지 목표라는 건 없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적당한 노력을 하는 게 내가 가진 기본적인 삶의 태도다. 그리고 이 태도는 후일 크게 실패 경험을 하게 만든다. 나는 뭘 해도 중간은 하고, 이상하게 운도 있어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하고 싶은 건 전부 이뤄냈다. 전문학교 진학, 졸업, 취업 정말 물 흘러가듯 해냈다.


인생의 허들을 높이지 않으니 성장이 없다. 위로 올라가려는 도전을 해야지 실패를 하고 이런 경험을 발판 삼아 능력을 키우는 것인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 한참 뒤에나 깨닫게 되니 지금은 전문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목차

1. 음향전문학교? 가장 먼저 인사부터

2. 일본에서 가장 처음으로 본 무대는 역시 성우 낭독극

3. 단 하나뿐인 취업 전략




1. 음향전문학교? 가장 먼저 인사부터


음향기술은 라이브 음향, 방송 음향, 레코딩 음향으로 나뉜다. 나는 성우와 함께 일을 하고 싶었으니 방송 음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집합과 해산이 필요한 라이브는 애초에 선택사항에 없었고, 레코딩은 음악과 관련되니 관심은 있었으나 방송 음향에 비해 후순위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구인율이 더 낮았다. 거기서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과 경쟁하려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방송 음향을 배웠다. 그런데 이 업계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 외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인사다. 인사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복도에 인사에 대한 용지가 붙어있던걸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문학교에서 전공과목만 배우는 건 아니다. 교양 수업도 여럿 들었는데, 외국인 학생이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일본어 과목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의 조언이 있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 게, 외국어를 사용하면 성격이 바뀌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내가 너무 강해서 다른 성격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나라는 캐릭터에 맞는 어휘를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 아무튼 교양으로 프랑스어라던지, 그림이라던지, 조명도 배웠었다. 생각해 보면 관심 있는 게 정말 많았다. 다만, 그런 관심사의 우선순위,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르던 시절이라 전공을 중심으로 중구난방으로 무언가를 공부했다.


2. 일본에서 가장 처음으로 본 무대는 역시 성우 낭독극


이 이야기는 사실 전문학교 다니던 때가 아니다. 일본어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일본에 간지 2개월쯤 되었을 때 아직 말도 잘 못하면서 그걸 보러 갔었다. 그때 쓴 글이 있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언어장벽에 공연을 즐길 수 없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일본에 와있으면서 언제 또 공연을 보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기회가 생겼을 때 잡자.”


나는 지금도 이때를 기억한다. 그 뒤로도 내가 간 공연장을 거의 전부 기억한다. 공연은, 집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가는 길의 기대감에 들뜬 발걸음은 주변 풍경을 바꾸어준다. 공연 상영중일 때는 당연히 흥분과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돌아가는 길도, 그때 들었던 곡까지 기억한다. 낭독극을 보고 난 뒤에 쓴 글 일부를 가져와보자면. “처음으로 좋아하는 성우를 만나 왜 내가 일본에 와있는지, 결심을 재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공연장 이름은 SOUND THEATRE in 마이하마 앰퍼시어터. 나는 나중에 스태프로서 이 공연장을 방문하게 된다.


3. 단 하나뿐인 취업전략


전문학교를 졸업하면 귀국하려고 했다. 아마 해외 취업의 장벽을 무의식 중에 감지하고 도망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취업을 했냐면, 부모님이 일본에서 취업하라고 해서. 주변에서도 일본에서 취업하는 걸 격려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취업해 버렸다. 다들 2학년 되면 취업준비를 하는데 나는 2학년 2학기, 그것도 11월에 준비를 시작해서 12월에 내정을 받았다. 어떻게 가능했냐고? 제목을 다시 읽어보자.


인생의 허들은 자신이 정하는 거다. 그렇다. 나는 외국인으로서 취업될 확률이 높은 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면 뭐든 상관없었다. 이게 내 취업전략이었다. 욕심을 내서 할 수 없는 걸 하려고 한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뛰어넘을 수 있는 허들을 찾아서 넘었을 뿐이다. 물론 높은 곳을 목표로 두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게 사람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도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적당히 노력하는 버릇이 나쁘다는 것조차 모르던 시절이기 때문에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고 해냈을 뿐이다.


다음에는 취업 후 회사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공연 현장 및 미디어 제작을 직무로 하면서 취미로 연극, 뮤지컬, 아티스트 및 작품 이벤트에 참여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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