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외국기업이든 한국기업이든 많은 기업이 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한다. 아시아 영업 이사였을 때, 회사도 인재 관리 시스템이 있었다. 직급에 따라 promising talent (PT), senior management potential (SMP) I, II 식이었다. 물론 최고 인재 그룹도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사가 내가 PT가 됐다고 했다. PT가 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향 분석을 여러 번 했고, 임원들과 모임에도 여러 번 초대됐다. 인재풀에 들어가면 다른 비즈니스로 옮기기도 더 수월했다.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온 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상사가 한국으로 출장을 왔다. 상사는 내가 SMP가 됐다고 했다. 우리 비즈니스에서 유일한 SMP라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한 게 인정받았다 싶어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때부터 지옥문이 열렸다.
SMP가 되고부터 그렇게 불려 다녔다. 글로벌 리더들은 한국에 출장을 왜 그리 오는지. 그때마다 일대일 미팅, 점심, 저녁에 초대됐다. 회사에서 두 세명의 멘토들도 만들어 줬다. 처음엔 모든 게 너무 좋았다. 선택받았다는 느낌이었고,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묘한 친밀감도 생겼다.
리더들은 SMP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내게 말했다. 글로벌 리더와의 미팅은 최소 한 달에 한 번씩 있었고, 이래라저래라 참 많은 말을 했다. 나는 SMP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준비도 노력도 많이 했다. 멘토들도 나를 돕기 위해 노력하며, 여러 가지를 제안했다. 물론 다들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네트워킹이 중요하다고 하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고, 전략이 중요하다고 하면, 전략에 관한 모든 책을 읽었다. 사업 감각이 중요하다고 하면 비즈니스 리더들을 만나 사업 감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늘 바빴고 늘 피곤했다. 동시에 두려웠다. '나를 SMP에서 탈락시키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다 부질없다는 걸 깨닫는 데 일 년이 걸렸다. 여전히 피곤한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 상황을 보니, 일 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람들 말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서 바쁘게 움직였는데 제자리였다. 또 깨달았다. 리더들은 내 장기 커리어를 알고 신중하게 조언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떠오르는 얘기를 한다는 걸. 그 순간적인 얘기를 세상 보물 취급하며 나를 흔들였다는 걸. 부단히 노력했으나 나는 제자리였고, 남은 건 SMP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리더들에게 잘 보여야 된다는 비굴함이었다.
정신이 들어 SMP가 어떤 의미였나 보니, 타이틀뿐이었고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족쇄였다. SMP가 아니라면 내 생활이 훨씬 자유로 왔겠다 싶었다. 옳다고 믿는 일을 자신감 있게 하고, 잘 보여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텐데. 승진도 월급 인상도 없는 SMP 타이틀 내려놓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람들 기대를 맞추려고 쫓아다닐 힘이 내겐 더 이상 없었다.
SMP라는 타이틀보다 자유가, 나다울 수 있는 당당함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내려놓기로 했다. 상사에게 SMP를 그만할래요 라는 말은 안 했지만, 사람들 말에 그만 휘둘리기로 했다. 일단 글로벌 리더들 모임에 안 나가기 시작했다. 멘토링도 멈췄다. 대신 가고 싶은 미팅엔 참석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으니 리더들이 그냥 사람으로 보였고, 오히려 그 모임들이 재미있어졌다.
내 마음이 세상 편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글로벌 비즈니스 총괄사장이 아시아 출장을 왔다. 일본 일정이 딱 우리 추석 명절이었다. 일본에 와서 총괄사장을 만나라고 상사도 말하고, 리더들도 말했다. 대답했다 '싫어, 추석이잖아. 총괄사장이 추석을 피해 왔어야지. 나는 내 일만 열심히 할 거야. 알아주고 말고는 그 사람들 맘이고, 난 내 맘대로 할 거야.'
사람들이 가끔 내게 물었다. PT로, SMP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네 마~~~ 음대로 해. 네 일을 세계 최고가 되게 하고,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해.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어. 그리고 지금 이 말도 들을 필요 없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