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기대는 이제 그만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아시아 영업 이사를 할 때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했다. 2년 차 때 승진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 올림픽 일까지, 두 사람 일을 했다. 바람과 달리 승진은 안 됐고, 상사는 노력하고 있다, 기다려 보란 말만 계속했다. '아니, 자기가 한 약속을 안 지키네'라는 실망과 '정말 노력하고 있을 거야'라는 마음을 오가며 시간은 흘러갔다.


중국 상해 출장을 간 어느 날, 12월로 기억한다. 회의실에서 25명 정도가 미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이러다 터지겠다 싶어 회의를 잠시 중단했다. 밖으로 나와 비어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고 앉아있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울었다. 왜 우는지 이유도 모르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내가 많이 힘들구나'라는 자각이 왔다. 힘든 걸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울음으로 터진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변한 건 없었다.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승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상사를 믿었다.

이듬해 3월, 상사와 그 전해 업무평가 미팅이 있었다. 당시 회사는 5단계로 업무성과를 평가하고 있었는데, 내게 중간인 3이라고 말했다. 억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난 죽을힘을 다해 일했으니까. 왜 3이냐고 하니, 탁월한 성과가 없었단다. 두 사람 일을 한 사람이 했는데, 탁월하길 바라는 건 기대가 잘못된 거 아니냐 물었다. 상사는 열심히 한 건 인정하지만, 성과가 탁월하지 않기에 3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또 울음이 터지려 했지만 참았다.


상사에게 일단 끊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울음이 터졌다. 한참을 소리 내 울다가 다시 전화했다. ‘나, 이 비즈니스에서 떠나겠다. 약속받은 승진도 안 됐고, 죽어라 열심히 일했지만 인정도 못 받고. 더 이상 여기서 내가 배울 게 없다.’ 고 담담히 말했다. 상사는 가만히 듣더니, ‘알았다. 다른 비즈니스로 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상사는 약속대로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내게 알려줬고, 다른 비즈니스 사장들에게 나를 추천했다. 4개월 후 승진해서 다른 비즈니스로 옮겼다.


스위스에서 글로벌 마케팅을 하다가 아시아 영업이사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 상사는 두 단계 승진을 약속했었다. 그 약속은 3년 내내 지켜지지 않았다. 일 년 후 한 단계 승진이 됐고, 두 사람 일을 하면 당연히 또 승진이 되겠다는 생각에 상사랑 상의하지 않고 덜컥 올림픽 일을 맡았다.


이 일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첫째, 협상에는 타이밍이 있다. 승진이 된 후 스위스를 떠나야 했다. 스위스에 있을 때가 최고 협상 타이밍이었고, 한국으로 오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협상 파워를 잃었다.


둘째, 말보다 결과를 믿을 것. 만약 상사가 두 단계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승진에 매여 3년을 보내진 않았을 텐데. 헛된 기대로 나를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이후 나는 직원들에게 승진을 절대 약속하지 않는다. 옵션은 둘 중 하나다. 승진을 시켜주거나, 아니거나. 노력하고 있다는 상사의 말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도 그런 희망고문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셋째, 일 범위 (job scope)이 커지면 승진이 될 거라는 말로, 알아서 일 범위를 늘리지 말 것. 나도 그랬고, 여러 직원들이 이 말을 상사에게 듣는다. 알아서 일을 더 찾게 되고, 더 맡게 된다. 일을 더 맡기 전에 협상을 해야 한다. 괜한 기대로 일만 많아지고 승진은 안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마지막, 떠나야 할 땐 과감히 떠나라. 가끔 생각한다. 나는 그 조직을 더 일찍 떠났어야 했었다고.


회사를 떠나고 보니, 나는 승진할 거라는, 인정받을 거라는, 상사가 좋아할 거라는 등의 여러 기대를 스스로 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 내 피, 땀, 눈물을 갈아 넣었다는 걸 깨달았다. 땀만 흘려도 됐을 텐데.


더 이상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다. 내가 훨씬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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