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약대를 졸업하고 제약회사를 다니다 MBA를 했고, 졸업 후 화학회사로 커리어를 바꿨다. 약물에 들어가는 화학물질 담당이었으니 약학 베이스를 완전히 떠난 건 아니었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커리어를 또 한 번 틀었다. 이번엔 전혀 모르는 분야로.
당시 사람들이 플라스틱 비즈니스라고 불렀던 스페셜티 팩키징 (Specialty Packaging) 팀 제품 디렉터 (Product Director)가 됐다. 폴리에틸렌 (Polyethylene, PE)을 원료로 포장재를 만들어 판매하는 부서였다. 내 스코어 카드는 EBITDA (감가상각, 세금 차감전 영업이익)로 제품군의 이익을 책임져야 했다.
공장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Production), 어디에 얼마의 재고를, 고객에게는 어떻게 전달할지 (Supply Chain), 어떤 마케팅 메시지로 (Marketing), 얼마의 가격에 (Pricing) 어떻게 고객에게 팔지, 제품 시작부터 끝까지 value chain을 최적화하여 단기와 장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Product Director를 작은 사장 (mini GM, General Manager)이라 불렀다. 한 가지 제약은 같이 일해야 하는 다른 부서원들이 내게 보고하지 않는 거였다. 내게 보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맡은 일을 잘하게 해야 했다.
원래 부서에서 플라스틱 비즈니스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글로벌 R&D 디렉터가 전화를 했다.
‘너, 정말 플라스틱 비즈니스로 가는 거야? 다시 생각할 수 있어? 거기 샤크 탱크 (Shark Tank)야.’
웃으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탱크 안에서 상어들처럼 서로 물고 뜯는다는 거지. 거기 가면 사람들이 너를 끌어내리려고 온갖 노력을 할 거야. 난 네가 안 갔으면 좋겠는데.’
아뿔싸, 뭐지 싶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기에 ‘정보 고마워. 그래도 가기로 했으니 한 번 부딪혀 볼게.’라고 말했다.
돌아보니 샤크 탱크가 맞았지만, 초반 내 느낌은 아주 큰 시장에 온 느낌이었다.
전에는 시골 마을에서 서로 다 알아 예의도 지키고 챙겨주기도 했다면, 큰 시장에 오니 온갖 사람들이 있었다. 불친절한 사람도, 사기꾼,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났다.
나는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방도 친절하게 대할 거라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친절하면 이용당했다. 착하고 친절하면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너 서클 (inner circle)이 있고, 암묵적인 행동 패턴이 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게 뭔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일본 마케팅 담당이 50대 여자였는데, 참 착하고 열심히 일했다. 늘 밤늦게까지 일을 하기에 일이 많나 보다 했었는데, 가만히 보니 한국, 일본 영업 사원들이 자기 일을 그 마케팅 직원에게 시키는 게 아닌가? 나중에 한국 영업팀과 친해져 그러지 말라,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 했더니, 그 직원은 착해서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게 뭐지 싶었다.
내 업무 중 하나는 물량과 가격 관리였다. 매월 정해진 물량을 최대한 좋은 가격에 팔아야 했다. 고객 조합 (customer mix), 나라 조합 (country mix), 제품 조합 (product mix)도 해 보지만,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영업사원의 협상 능력이었다. 내 담당 제품은 유가와 시장의 수요공급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가 동향과 시장 상황을 끊임없이 예측했다. 가격이 내려갈 것 같으면 빨리 많은 물량을, 가격이 올라갈 것 같으면 최대한 늦게 팔았다. 시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현장에 있는 영업사원들이니 이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아주 중요했다.
그 관계를 위해 여태껏 써오던 방법으로 접근했다. 친절하고 정중하게 그럴듯한 논리와 함께.
결과는 참패였다. 하루는 중국 최고 베테랑 영업사원과 통화를 했다. 평소 분석적인 내 성격 그대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시장이 어떻냐? 경쟁사 가격은 어떻냐? 그런데 이 직원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들을 모르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왜 그 정보들이 중요한 지, 왜 훌륭한 영업사원들은 그런 정보를 아는지 내 딴엔 도와준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름 뿌듯했다. ‘그래, 열심히 설명했어. 다른 영업사원에게 전화해 보자.’
중국 다른 영업사원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다시 해 보니 또 안 받았다. 바쁜가 보다 생각하며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안 받았다. 그날 나는 여러 명의 중국 영업 사원 중 누구와도 통화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다들 계속 전화를 안 받았으니까. 영업사원들이 내 제품을 안 팔면 그 달 실적은 끝이 나는데, 초조해졌다.
나중에 알았다. 20년 영업을 한 베테랑 영업사원을 비즈니스에 온 지 3개월 된 초짜가 가르치려 했다는 걸. 그 베테랑 직원은 최고 성과를 내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외부에서 온 사람이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자존심이 엄청 상했던 거였다. 그 직원은 중국 직원들 단톡방에 이 기분 나쁜 사건을 올리며 나한테 연락이 오면 받지 말라고 얘기한 것이다. 내가 직급이 더 높기에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할 거라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 졸지에 중국 영업사원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중국 시장이 가장 크기에 중국 직원들이 내 제품을 팔지 않으면 실적은 물 건너갔다.
나중에 들으니 내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외부에서 사람이 와서 ‘도대체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얘기가 직원들 사이에 돌았단다.
나는 사람들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그때 처음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만나보지 못한 종류의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