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 서클 (Inner Circle)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스페셜티 팩키징 조직 2년 차가 되니 일도, 사람도 편해졌다. 말과 속마음을 구별할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행동 규범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어느 날 아시아 리더십 미팅에 참석해서 인재풀 (talent pool)을 논의할 일이 생겼다. 리더들이 자기 팀 유망한 인재 (Promising Talent, PT)를 소개하면, 다른 리더들이 의견을 얘기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PT에게 3A가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Ability (능력, 역량), Ambition/Aspiration (성공하겠다는 야망), Achievements (업적, 업무 결과).


마케팅 디렉터가 한 마케팅 매니저를 PT로 소개했다. 지난 몇 년간 계속 PT였다는데, 내가 본 그 직원은 PT가 아니었다. 능력과 야망은 있을지 몰라도 보여준 결과가 없었다. Product Director는 마케팅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하는데, 그 직원은 내게 늘 말만 했다. 늘 바쁘다고. 일 년 내내 바빴다.

나는 '내가 본 그 직원은 결과를 보여준 게 없다. 똑똑하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지만 PT라면 결과도 내야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회의실이 조용했다. 미팅 책임자였던 부사장님 안색이 안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또 실수했구나 싶었다.


미팅이 끝난 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게 왔다. ‘네가 아까 그 말해서 너무 좋았다. 우리가 아무리 부사장님께 얘기해도 듣지를 않는다. 외부에서 온 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니 부사장님이 할 말이 없었을 거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직원을 지지하는 중국 영업전무 눈치가 보여, 부사장님도 그 직원을 예뻐하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였다.


이 일로 원래 조직에 있던 동료들과 더 친해졌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친해져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이너 서클’이 이거구나 싶었다. 또 신기한 건 그 서클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누구누구 라인이고, 누가 누구를 챙기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본 가입 조건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였다. 일을 정말 잘하면, 그 서클 일원이 되는 것이다. 서클의 회장도, 모임도, 초청장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누가 멤버인지 알 수 있었다.


외부에서 온 내가 어떻게 그 서클로 갈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첫째는 하루 4시간만 일하려는 노력 덕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걸 철저히 버리고, 중요한 걸 반드시 해내는 걸 배웠는데, 서클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다. 둘째, 잘 먹고 잘 자고 복싱도 하며 힘이 생겨 내가 당당해졌기 때문이었다. 셋째, 물론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럼 왜 이런 서클이 생겼을까? 일을 하면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서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일단 책임감이 엄청났다. 약속하면 반드시 해냈다. 둘째,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업무 얘기는 5분 안에 끝냈다. 핵심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얘기했기에. 결정할 게 있어 미팅을 30분을 잡아도 5분 일 얘기하면 끝, 나머지 5분은 어떻게 지내냐 묻는, 10분 안에 끝나는 미팅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번 달에 열개 팔아줘’ ‘8개만 가능해’ ‘10개 하려면 내가 뭘 더 도우면 돼’ ‘그럼 A 제품 물량 더 주고, B 제품 가격 10%만 할인해줘.’ ‘오케이.’ 끝이었다. 그 직원에게 다시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해낸다는 걸 아니까.


이 서클을 벗어나면,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 한 시간, 막상 약속하고 나면 소식이 없어 점검하느라 또 시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해낸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중요한 일은 이너서클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겼고, 그다음 중요한 일은 서클 밖의 사람들에게 맡겼다.


이너서클 사람들과 일하는 건 정말 신났다. 시간도 노력도 덜 들었으나 결과물은 최상이었다. 서클 안의 사람들과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클 밖에 있을 때는 존재여부도 몰랐고, 있어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하나 확실한 건, 지금도 그 서클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새 멤버가 됐을 거라는 것이다. 또한 나는 PT나 SMP (Senior Management Potential) 같은 회사가 말하는 인재보다 서클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다양성과 포용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이 글을 쓰며 포용 면에서 몇 걸음 후퇴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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