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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pr 18. 2024

안녕, 내 차였던 차야

그때의 나는 삶의 대부분이 결핍된 것처럼 느껴졌다. 일도 사랑도 어딘가 정체된 채로, 상실된 듯 늘 안개낀 모양의 매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동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사실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무엇이라도 생활의 변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또래 남자들과는 다르게 특별히 차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지향하는 방향 또한 달랐다. 많은 남성은 대체로 고성능의 머신에 관심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이 가지고 싶었다.


그런 기준으로 고르다 보니 지금의 차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이름을 붙여준다거나 특별히 애정을 갖고 세차를 열심히 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차량 내에 무언가를 두거나 붙이는 것도 싫어해서 실내는 늘 신차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1년에 한 번씩 엔진오일 같은 소모품을 꾸준히 교환해 준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차와 함께 했던 추억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고백하자면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구매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하나의 공간으로서, 적당히 돈이 드는 도구로서 이용했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지나고, 사흘 전 주변 정리를 위해 차를 중고차 딜러에게 보내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내 차가 혼자 달려가는 모습 같은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뒷모습을 보이며 멀리 사라지는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몹시 서운해졌다. 마치 이제 다 자라서 멀리 떠나가는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제야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가장 처음 기쁨에 기념사진을 찍었던 일.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처음 차를 타온 온 내 모습을 보시고는 “이게 규태 차야?~”라고 했던 일.


인연을 마지막을 예감하고 상실감에 한참을 정차한 채로 멍하니 있다가 주차위반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와 슬프고 웃겼던 일.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옆자리에 태웠던 일.


부모님을 모두 태우고 식사를 갔던 어느 주말.


작은 차에 친구들을 가득 태우고 가평으로 여행을 갔던 여름.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의 쓸쓸한 기분.


집에 도착했지만, 주차장에 머무르며 한참 동안 음악을 듣던 날들.


첫눈을 보며 너를 생각하던 계절.


수영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의 저녁 노을.


모든 순간 안심할 수 있었던 나의 공간.


이게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던 차와의 추억인 걸까, 새삼 고맙고 늘 뒤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무생물의 존재가 있었다.


첫 내 차였던 차는 떠나갔지만, 다음 공간에서의 추억들이 이제는 조금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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