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거실 창문의 커튼을 열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후가 변하면서 소나기는 종종 내렸지만 긴 시간 비가 내리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소란스러운 태풍이 제법 가까워졌다.
처서가 지나자 기세 좋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고, 해가 저물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열대야에 창문도 열지 못했던 날이 무색하게 밤이 되어 창문을 열면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의 문턱을 넘었다. 이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어느새 9월이 눈앞이다. 올해도 벌써 2/3가 지났다. 이렇게 머지 않아 연말이란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고, 거짓말처럼 낙엽이 지고, 두꺼운 코트를 입게 되겠지.
외국인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순조로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따금 부딪히는 벽에 몇 번이나 무력감을 느꼈다. 세상에 나 한 명의 존재는 이렇게나 작고 보잘것없었구나. 종종 그런 기분과 마주하곤 한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밥을 짓고, 제철 과일을 먹고, 웃으며 대화하고, 사진을 하며 살아간다. 그럴 때면 삶은 어쩌면 이걸로 충분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며칠 전, 옆집에 살고 있던 노부부의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구급차가 왔다. 창백한 모습으로 엘리베이터실을 빠져나갔고,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만일 돌아가셨다면 혼자 남겨진 할머니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가끔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지만, 삶과 죽음은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다. 언젠가 나의 일이 되겠지, 어떤 모습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운이 좋게 노년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문득 궁금했다.
촬영차 짧은 기간 사이에 두 번이나 서울에 다녀왔다. 겨우 두 시간 남짓 떨어진 비행거리에 이렇게나 다른 공기가 느껴지는 것은 매번 신기하다. 가장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도쿄는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늘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 이제는 이곳이 집이 되었다.
어제 카나와 근처의 수영장에 다녀오면서 불과 1년 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삶은 의지만큼 변해간다.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지만,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 정도는 정할 수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