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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Sep 20. 2023

갑자기 모차르트는 왜?

|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시작된 관심 |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천재성이라고는 단 1g도 없는 나는 이 대목에서 '쳇, 천재가 천재의 음악을 좋아하는군!'하고 입을 비죽거린 적이 있다. 만성 비염만큼이나 지긋지긋한 '만성 재능 결핍'을 앓다 보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렇게 쓰니 마치 모차르트를 질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모차르트를 상대로 질투라니, 가당키나 한가. 오히려 천재 모차르트와 더욱 비교가 되도록 나를 끌어내리는 것이 내 일에 도움을 주곤 했다.


 가만히 놔둬도 빛나는 모차르트를 더욱더 돋보이게 하려고 나와 비교하다니, 나는 왜 그랬을까. 내 일터가 중학교이기 때문이다. 음악교사인 나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모차르트의 곡으로 수업을 한다. 중학생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2~3분이라도 듣게 하려면 약간의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노는 것 밖엔 할 줄 몰랐던 다섯 살의 나와 무려 작곡까지 했던 다섯 살의 모차르트를 굳이 비교하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데는 아무런 업적(?)이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꽤나 유용했다. 베토벤 아빠까지 끌어들이며 모차르트에 대한 짧은 설명을 이어갈 땐 '어쩜', '도대체', '말도 안 돼', '우와', '진짜' 등이 마구 섞여 들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파는 홈쇼핑 쇼호스트가 있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윽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한 명도 빠짐없이 음악에 집중하면 '전상품 매진'의 기쁨이 몰려왔다.


 사실, 나는 모차르트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잔뜩 오버하며 모차르트의 음악에 감탄하는 이유는 학생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나의 영업 비법일 뿐, 내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작곡가를 나열했을 때 모차르트의 자리는 한참 뒤로 밀려난다. 그렇다 보니 모차르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에게 팬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업 때문이라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도 딱히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 대상에 대한 관심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시작되기도 하지 않나. 내겐 모차르트에 대한 관심이 그랬다. 올여름, 나는 모차르트에 빠져 있었다. 나의 8월은 모차르트에 관한 책 읽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7월 말에 다녀온 오스트리아 여행이 만들어낸 여파였다.


| 휴게소에서 만난 모차르트 초콜릿 | 

 올해 중학생이 된 아이가 가족 여행으로 비행기를 타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좀 크고 나면 같이 다녀주지도 않더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부모를 따라다녀주는 시기가 끝나기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한 시점이 여름방학 시작 열흘 전쯤이었다는 사실이다. 애 상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학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급하게 준비하는 여행이라 적당한 패키지에 몸을 맡기기로 하고, 가능한 날짜와 비용을 고려해서 여행 상품 하나를 골랐다. 잘츠부르크와 빈을 포함하는 일정이었다. 모차르트 때문에 일부러 잘츠부르크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가족여행을 위한 여행 상품을 골랐는데 일정 중에 잘츠부르크가 끼어있었을 뿐이다. 


 여행을 결정하고 떠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모차르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여행의 장점일까.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만났다. 시작은 휴게소였다. 버스로 이동하던 중 잠깐 휴게소에 들르게 되었는데,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는 휴게소마저도 재미난 구경거리가 되지 않나. 나는 박물관 전시를 관람하기라도 하듯 진열된 과자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게 된 모차르트 초콜릿. 세상에, 모차르트는 어쩌자고 휴게소까지 진출한 걸까.


휴게소에서 본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

 휴게소의 모차르트 초콜릿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모차르트는 자기 고향인 잘츠부르크를 떠나고 싶어 했다.(나한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한 건 아니다. 책에서 읽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보니 잘츠부르크는 거의 모차르트가 먹여 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기도 모차르트, 저기도 모차르트, 모차르트 천지였다. 말년에 생활비가 부족해서 돈 빌리는 편지를 쓰곤 했던 모차르트는 후세에 자기가 이런 식으로 상품화될 거라고 꿈엔들 예상했을까. 



| 모차르트와 진로 수업 |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예전에 읽었던 모차르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작곡가 모차르트가 아닌 인간 모차르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책 읽기였다. 특히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가 주고받은 편지글에는 나에게 던지는 화두가 너무 많았다. 분명 예전에도 읽었는데, 그땐 무심코 넘겼던 내용들.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기 전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최근에 나온 평전까지 읽고 나니, 열 권 남짓한 책이 쌓였다. 그 옆으로 모차르트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이 쌓인 건 개학이 다가올 무렵이었고. 모차르트 책 더미와 비슷한 높이로 쌓인 그 책들은 진로 수업 준비를 위한 책이었다.(2학기부터는 진로 수업도 몇 시간 맡게 되었다.) 모차르트 책과 진로 수업 책이라니, 누가 봐도 다른 분야의 책이라고 말하겠지만 올여름의 나에게는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보이는 것 같았다. 모차르트의 고난도 결국은 대우 좋은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위한 여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여기도 모차르트. 저기도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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