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다람쥐 Oct 09. 2023

생산라인 근무는 좋아하는 일인가요? 잘하는 일인가요?

| 그도 취준생 시절에는 외국어 공부까지 |

 모차르트는 빈 궁정 음악가로 들어가려고 노력했으나 쉽지가 않았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재 모차르트가 어째서? 왜? 왜냐면, 그 자리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 싶은 자리에 이미 누군가가 있다는 것, 구직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모차르트는 끝내 빈 궁정 음악 감독이 되지 못했다. 대신 궁정 실내음악 작곡가에 임명되긴 했는데, 전임자 글룩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 후임자로 들어간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1787년에 그 자리에 들어갔고, 1791년에 사망했다.


 그럼 잘츠부르크를 떠난 모차르트는 빈에서 정규직 취업을 하기 전까지 취준생(?)으로서 무엇을 했을까? 토익 공부? 모차르트가 토익에 응시하지는 않았지만, 영어 공부는 했다. 프랑스어 공부도. 

 요즈음은 매일 프랑스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영어 쪽도 벌써 세 번이나 레슨을 받았습니다. 석 달만 지나면 영국 책을 그럭저럭 읽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1782년 8월 17일, 모차르트가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쓴 편지 중에서 - 

 빈에서 구직이 어려워 보이자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구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모차르트가 작곡하는 모습은 떠올려볼 수 있지만 영어 공부하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어떤 교재로 공부했을까?) 빈에 머물기로 하고 결국은 빈 궁정 실내음악 작곡가가 되긴 했지만 프랑스어와 영어 공부를 하던 모차르트의 모습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외국어 능력을 갈고닦는 우리 주변의 취준생과 비슷해 보였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


| 이런 학생에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는 어떻게 들릴까 |

 모차르트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 구직에서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분야의 일자리가 적다면 구직이 힘들어진다. 청년 실업 문제도 청년들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어떤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취업률이 높은 학교라고 홍보를 하면 솔깃해한다. 이런 이유로 특성화고 진학을 결정하는 학생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는 진로 교과서의 활동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다. 그 고등학교를 나와서 취업하는 자리는 생산직이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일'로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을 꼽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언젠가 채사장의 <시민의 교양>을 읽다가 이 부분에 밑줄을 친 적이 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아닌,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셨습니까, 잘하는 일을 선택하셨습니까?"
 "음.... 생각해 보니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뭐든 열심히 했던 것 같네요."
 시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직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이라거나 잘하는 일이라거나, 산업화사회에 이르러서 그런 건 없습니다."
비서실장이 반문했다.
 "아니, 왜 없나요?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직업을 선택하는 거 아닌가요?"
"운동화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겁니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선택한 겁니까?"
- 채사장, <시민의 교양> 중에서 - 


| 진로 탐색은 필요하니까 |

 교과서 속 세상과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 사이의 괴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활동으로 다음 수업을 꾸려나갈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진로 탐색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맞는 말이기에 진로 탐색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보자는 목적의 활동지를 만들어보았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유튜브 화면 형식으로 활동지를 구성해서 썸네일을 그려보게 했다. 주제는 '진로 탐색의 중요성'. 완성작을 스캔해서 교실 TV로 함께 볼 예정이니 친구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열심히 그려보자고 했다. 썸네일을 그리는 동안, 그리고 친구들의 작품을 함께 보는 동안 진로 탐색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이들이 썸네일을 그리는 중간중간 이야기했다. 

 "진로 탐색은 하루 이틀로 끝낼 수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학교에서 여러 교과를 공부하면서도 그 교과를 통해 자신의 어떤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주변 어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의 제조사가 어딘지 알아보세요. 진로 탐색은 책상 앞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듣는 모든 것에 관심 분야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아이들을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라고 말한다. 가끔은 아이들의 가능성이 부러울 때가 있다. 다른 전공과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날에는 아직 전공조차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이 더 부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좋기만 할까. 막막함이 더 크게 느껴지진 않을까. 모차르트처럼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명확한 경우라도 상황에 따라 쉽지 않은 것이 일자리 찾기이다. 하물며 청년 실업 문제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고등학교를 가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아직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쓴다. 진로 수업을 함께 하는 이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다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전부터 좌절하는 학생이 없기를 바란다. 



이전 04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기 힘든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