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크트 길겐 마을에는 모차르트 하우스가 있었다. 전날 갔던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모차르트 생가가 있었는데 여긴 모차르트 하우스라니? 경치 좋은 호숫가 근처의 집이니 모차르트의 별장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어떻게든 끼워 맞춰서 모차르트랑 연관이 있는 곳처럼 보이려고 애쓴 흔적일 뿐일까? 알고 보니 이곳은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자 그의 누이 난네를이 오래 살았던 집이었다.
모차르트에게는 누나가 있었다.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라는 이름보다 애칭인 난네를로 더 많이 알려진 그녀는 모차르트처럼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모차르트 가족의 그랜드 투어에서 모차르트 남매는 함께 연주했다. 유럽 전역을 돌며 신동 남매의 음악적 재능을 뽐냈던 3년간의 그랜드 투어. 하지만 그 후 몇 년 뒤 이탈리아 여행은 난네를은 남겨둔 채 모차르트와 아버지만 떠나게 된다. 동생 모차르트가 음악적 성과를 거두는 동안 난네를은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내로라하는 수재 남매가 있었는데, 남동생만 유학을 보내주고 누나는 얌전히 집에 있다가 시집이나 가야 했다는 스토리와 다를 바가 없다.
난네를 역시 모차르트처럼 작곡을 했다. 모차르트도 편지에서 난네를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럼 뭐 하나. 그녀는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는, K-장녀가 들으면 울화병 나기 딱 좋은 말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다. 집안의 지원은 남동생 모차르트에게 집중되었고 자신은 부유한 신랑감을 만나 부모의 노후 봉양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이 이미 두 번이나 결혼한 적이 있고 아이도 다섯이나 있었던 재혼남.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콘스탄체와 결혼한 모차르트와 비교하면 그녀의 삶이 더욱 안쓰러워진다.
딸아이와 함께 <꿈을 가져도 되오?>를 읽은 적이 있다. 여자는 그저 시집가서 아들 낳은 역할로만 존재하던 시절, '꿈을 가져도 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된 김점동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이가 먼저 읽고, 내가 건네받아 읽었는데 어느 순간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흘렀다. 훌쩍거리는 엄마를 보던 아이가 내 곁에 와서 물었다.
"엄마, 왜 울어? 그 책이 슬퍼?"
"응. 슬퍼."
"도대체 어디가? 나는 울 정도로 슬픈 부분은 없던데?"
그렇다. 아이와 나는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어느 부분에서 슬픈지 몰랐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아들이 없어 할머니 앞에서 서러웠던 적이 많다. 할머니는 본인의 아들이 아들을 갖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불쌍히 여기셨다. 할머니와 줄곧 함께 살았던 우리는 그런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딸아이는 아들 타령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직은 남녀차별을 실감할 일도 잘 없었을 테다. 나의 눈물 버튼을 이해하기엔 관련 경험이 별로 없다. 다행인 일이다.
K-장녀이지만 '커서 꼭 아들 노릇 해야 한다'는 할머니 말씀을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나는 부모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아이와 대화할 거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모차르트 하우스 앞에서 우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네가 큰 업적을 이루면 우리집은 'OOO 생가'가 되겠네. 여기처럼 박물관으로 운영되려나?"
"그럼 입장료 받아?"
"입장료는 박물관 운영하는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근데 박물관이 OO동 OO호가 되면 웃기겠는데?"
"아... 우리 아파트 시끄러워지면 이웃들한테 폐 끼치는 거잖아. 박물관 온 김에 놀이터에서도 좀 놀다 가고 그럴 건데, 우리 놀이터 복잡해지겠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는 유명히지면 안 되겠어."
"그래, 우리 아파트 주차 자리도 부족한데, 주차 때문에라도 안 되겠네. 박물관 지어질 만큼 업적을 이루는 건 참아야겠다."
"응, 그게 좋겠어."
웃으면서 나눈 이야기지만 박물관의 주인공이 된 딸아이를 상상해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이가 쓰던 책상이 전시되고 그 책상 위에는 훗날의 업적에 밑바탕이 되었던 책이 올려져 있겠지. 기왕 떠올려보는 김에 디테일을 더하기 위해 그 책이 어떤 분야의 책일지 상상해 봤다. 상상이 잘 안 됐다. 책 표지 디테일은 포기했다. 대신 인물에 대한 설명이 적힌 설명판을 떠올려보았다. 짙은 회색 바탕에 흰색 글씨, 박물관에서 자주 보던 글꼴로 적힌 설명판이 떠올랐다.
주변 혼잡과 주차 문제 때문에 박물관이 만들어질 정도의 능력 발휘는 애써 참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는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웃겼지만 설명판을 떠올리며 바라게 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어떤 분야에 관한 내용이 되었든 그 설명에 여성으로서 받은 차별과 배제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세상에 선보이지 못했던 난네를과 감히 꿈을 가져도 될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김점동의 시대보다는 발전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성별격차 문제로 2023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나의 바람이 괜한 걱정에서 비롯된 건 아닌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