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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Feb 13. 2021

저랑 얘랑 닮았다구요?

서로 언짢은 고양이와 집사

반려동물과 사람이 점점 닮아간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다. 종이 다르니 얼굴 생김새가 닮은 것은 아닐 테고, 10년 20년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분위기나 행동이 닮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고작 3년 정도 같이 살았을 뿐인데, 주변에서 여명이와 내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명이가 살이 오르기 시작한 시점부터 부쩍 더. 저랑 얼굴이 닮았다는 건 아니죠? 라고 물어보면 얼굴도 닮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명이 요즘 살이 올라서 턱이 접히기 시작했는데 정말 저랑 닮았나요...? 그런 부분이 유독 더 닮은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나는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새우튀김처럼 똥실똥실해진 여명이

내가 보기에도 여명이랑 나랑 비슷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외양이 아니라 하는 행동이나 성격 같은 부분들이 주로 그렇다. 일단 우리는 둘 다 물건을 정말 험하게 쓴다. 여명이한테 장난감을 사다 주면, 그건 대체로 한 달을 못 넘기고 '한 때 장난감이었던 무언가'로 변한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일수록 그 기간이 짧아지는데, 얼마 전 남동생이 사다 준 낚싯대는 정확히 5일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물건을 험하게 썼으니까 다시 안 사줄 거라고 다짐했는데, 여명이가 날마다 낚싯대를 보관했던 자리에 가서 대성통곡을 했다. 결국 투덜투덜하면서 다시 똑같은 걸 사 왔고, 여명이는 만족했다. 이 이야기를 부모님한테 했더니 어쩌면 너랑 하는 짓이 똑같냐고 혀를 찼다. 내가 망가뜨린 물건이 너무 많아서 부모님이 다시 안 사주기로 다짐하면, 얼마나 집요하게 사달라고 조르는지 결국 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인과응보, 부메랑 이런 것들이 정말 있다는 걸 느꼈다.

여명이의 총애를 받은 결과

또 닮은 점은 있다. 여명이와 나는 둘 다 말이 많다. 여명이가 어느 순간부터 수다쟁이가 된 느낌이었는데, 항상 여명이한테 쉬지 않고 말을 거는 나 때문인 것 같다. 여명이는 내가 집에서 나갈 준비를 시작하면 꼭 나가지 말라는 듯이 야옹야옹 말을 걸고, 내가 집에 돌아오면 왜 이제 왔냐는 듯이 야옹야옹 타박한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여명이는 바빠진다. 늦게 왔다고 구박도 해야 하고 반갑다고 골골골골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내 다리에 머리도 문질러야 하고... 손만 번개같이 씻고 나는 여명이가 만족할 때까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아이 예쁘다를 해줘야 한다. 그러고 나면 여명이는 이제 간식을 내놓으라고 사자처럼 운다. 본가에 있을 때 가족 중에 누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도 그랬다. 가방도 못 벗은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걸 본 적도 없는 여명이가 어떻게 그런 부분까지 닮았을까 싶다.

말이 정말 많은 편(집사는 더 많은 편)

그렇지만 외양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 여명이는 요즘 털이 찐 건지 살이 찐 건지 부쩍 푸짐해졌는데, 그 무렵부터 나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해서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있다. 나랑 생긴 게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여명이도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야생에 사는 남성 고양이는 머리가 클수록 인기 있는 고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덩치에 비해 머리가 작은 편인 여명이는 길에 살았으면 천하 박색이었을 것 같은데 사람이랑 같이 살아서 이렇게 귀염 받고 사는구나 싶었다. 요즘 살이 오르면서 얼굴도 좀 통통해졌는데, 확실히 좀 더 귀여워 보인다. 기분 탓인지 나랑 닮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여명이가 좀 언짢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 아빠는 내가 더 귀엽다고 했다는 걸 여명이가 알아주면 좋겠다.

거짓말 말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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