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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Feb 19. 2021

우리는 조금 불편해지기로 했다

제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줄이는 연습

자연에서 살았으면 지구에 무해했을 텐데 고양이인 여명이가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럴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겠지만 여명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이 인간 세계의 쓰레기를 유발했다. 사료와 간식은 비닐이나 캔에 들어있고, 화장실용 모래도 비닐에 들어있다. 모래로 덮어놓은 여명이의 배설물은, 내가 캐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내구성 약한 물건 선발대회를 하면 금은동을 모두 휩쓸 여명이의 장난감들도 고장 나는 순간 재활용조차 하기 힘든 쓰레기가 된다. 결국 여명이가 먹고 배설하고 노는 모든 행위는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여명이는 자기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밖에 살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여명이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편은 아니었다. 5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채우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으니까. 회사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니까 실제로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더 많았겠지만 많이 버리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여명이와 함께 살면서부터는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5리터 봉투가 꽉 찼다. 여명이가 없을 때보다 3배 이상의 쓰레기를 만드는 인간이 된 것이다. 내 소비생활은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5리터 종량제 봉투 세 개 중에 두 개는 여명이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종량제로 버리는 쓰레기도 늘어났지만 재활용으로 분류할 것들도 많이 늘어났다. 이건 여명이가 아니라 내가 주범이다. 원래 배달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부쩍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원래도 꾸준히 나오던 페트병, 세제통, 화장품 케이스 등의 플라스틱에 음식 포장재가 더해졌다. 여기에 여명이 간식 캔까지 얹으니 분리배출해야 할 것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최소로 배출을 하려고 애쓰는 일반 쓰레기는 차차 줄여나가더라도 어느새 늘어난 플라스틱 쓰레기는 줄여야 할 것 같았다. 바다에 떠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과 부리에 페트병 고리가 걸린 새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죄책감인지 걱정인지 모를 마음이 들어서 더욱 그랬다.

내가 사용하는 플라스틱들 중 줄일 수 있는 게 있는지 살펴보다가 바꾸기로 한 건 주방 세제, 샴푸 등이었다. 여명이가 오고 나서 나는 씻어야 할 그릇이 많이 늘어났다. 아침저녁으로 내 그릇과 함께 여명이 밥그릇, 물그릇, 간식 그릇을 씻었다. 설거지를 자주 하다 보니 세제가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져서 나 혼자서 쓸 때보다 더 자주 세제를 사게 되었다. 사용하던 세제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해서 나는 고체 주방 세제를 주문했다. 한 올 한 올 풀리기 시작한 아크릴 수세미도 천연 수세미로 교체했다. 그리고 플라스틱에 든 손 세정제와 샴푸를 비누와 고체 샴푸로 바꾸었다.

여명아 잠깐만...!!!

고체 세제와 비누, 그리고 고체 샴푸를 고를 때도 기준을 세워서 고르려고 했다. 이런 물건을 만드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기업일 테니 나는 다른 부분을 확인했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 기업의 물건을 사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곳이 동구밭이었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었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다만 한 가지, 생산과 소비가 아직은 조금 균형을 못 맞추는 건지 품절이 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고체 샴푸만은 다른 곳에서 구매했다. 마찬가지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톤28이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지속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물건을 안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했다.

물에 녹는 옥수수 완충재 구경하러 온 고양이

물건을 버릴 때도 더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분리배출을 하기 시작했다. 병 안을 깨끗이 헹구고 라벨을 벗기고 고리를 잘라냈다. 배달음식 통에 붙은 비닐은 한 조각도 남지 않도록 시간을 들여 떼어냈다. 이러나저러나 음식을 담아서 오염되고 변형된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쉽지 않을 테니 가능하면 안 쓰는 게 제일 좋겠지만. 또 여명이 화장실 청소에 필요한 비닐도 친환경으로 바꾸고 최소로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최근에 생분해 비닐에 대해 알게 되어 한 번 사용해보려고 한다.

요즘도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쓰레기와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을지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 아주 작은 부분들을 바꾸었을 뿐이고, 여전히 나와 여명이는 여러 종류의 쓰레기를 만들며 살고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쓰레기와 플라스틱을 줄이며 여명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겠다. 생활은 조금 더 불편해질 수 있겠지만 결국 여명이와 내가 더 오래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일 테니까.

나는 별로 불편한 거 없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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