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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Mar 30. 2023

어떤 식탁

육식동물과 함께 살며 채식을 생각할 때

임보하던 여명이를 입양해서 내가 끝까지 돌보기로 마음먹은 후에도, 우리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다. 반려동물과 보호자, 가족 같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나에게는 '반려=평생' 같은 느낌이라서 그 말이 살짝 무거웠고, 아직 완전히 정이 들기 전이라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낯간지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관계에 꼭 맞는 말을 찾았다. 바로 '식구'였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명이와 식구가 된 후에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같이 밥을 먹는다.

다시 직장인이 된 요즘, 나는 저녁만 여명이와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여명이 밥을 챙기고 점심에 먹을 사료들을 세팅한 후에 6시쯤 집을 나선다. 내가 없는 동안 여명이는 사료를 먹고 싶을 때 자유롭게 먹고, 오후 6시 무렵 내가 돌아오면 그때는 나랑 같이 저녁을 먹는다. 이제 이 루틴에 완전히 적응을 했는지, 내가 퇴근하고 오면 여명이는 저녁캔이 들어있는 서랍 앞에 척 앉아서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하루에 한 끼만 함께 먹을 수 있어서 아쉽기도 하고, 한 끼라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으로 평일 저녁 식사를 한다.

얼른 캔 꺼내줘...

불과 석 달 전인데도, 하루 세끼를 여명이와 함께 여유롭게 먹던 프리랜서 시절이 전생의 기억같다. 그때 버릇을 잘못 들였는지 여명이는 요즘도 자기 밥을 주기 전에 내 밥을 먼저 챙기면 호랑이처럼 울면서 호통을 친다. 결국 매번 여명이 밥을 먼저 챙기고 내 밥 준비를 해서, 내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여명이는 이미 식사를 다 끝내고 내 음식에 참견을 시작한다. 참견하는 건 좋은데 냄새가 낯설어서 그런지 꼭 화장실에서 하듯이 파묻는 시늉을 해서 내 입맛을 떨어뜨린다. 날마다 보는 음식인데도 그게 그렇게 낯설고 못마땅한가 싶어서 기가 찬다.

나도 딱히 여명이 밥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흥

여명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식탁은 그 사이 많이 변했다. 처음에 사료를 잘 못 먹어서 불린 사료를 먹던 여명이는 이제 까드득까드득 야무지게 잘 씹어 먹게 되었다. 여명이의 식탁이 점점 다양해지는 동안 내 식탁은 조금 더 단출해졌다. 닭이든 소든 돼지든 끼니마다 항상 고기를 활용한 메뉴가 한 가지는 있었는데 이제 고기가 많이 사라졌다. 회사를 다니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구내식당에서 고기가 포함된 메뉴도 먹고 있지만, 집에서 세끼를 다 먹던 시절에는 고기 없이 밥을 먹는 일에 익숙했다. 식탁에서 고기를 몰아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모든 일의 시작에는 여명이가 있다.

집에서  차려먹던 음식들

여명이를 집에 들이기 전까지 동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래 볼 일이 없었다. 방송이나 SNS에서 보는 게 전부였고, 고기는 고기로 받아들였을 뿐 그게 원래 살아있던 동물의 살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으며 살았다. 하지만 여명이를 돌보면서 고기를 점점 동물로 인식하게 되었고, 먹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불편한 마음과 더불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도 내 식탁에서 고기를 점점 몰아내는데 한몫했다. 이것도 시작은 여명이의 밥상이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여명이가 주로 먹는 참치캔을 보며, 그 참치가 살고 있는 바다가 너무 오염되면 안 될 텐데 하는 마음에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명이의 한 끼를 위해 목숨을 잃는 참치보다 그 환경을 먼저 걱정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고양이는 원래 육식동물이니까 여명이는 자연에서 살았더라도 새든 물고기든 생명이 있는 무엇인가를 먹고살았을 거라고 혼자 합리화를 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낼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접 먹이를 구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동물을 해치지 않고도 육식동물이 필요한 영양소를 다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해 주기 전까지 아마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게 될 거다.

여명이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 간식

지금도 여명이는 매일매일 닭과 오리, 참치와 연어 같은 것들이 들어간 캔과 사료를 먹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명이는 새로운 걸 먹으면 죽는 줄 아는 모양이라서 먹던 종류의 캔과 사료만 먹는다. 여러 종류의 먹이들을 시도해 봤지만 새와 물고기 종류만 먹는 한결같은 취향이다. 육식동물인 여명이의 식탁에 오른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보려고, 여명이가 자연에 살았어도 새랑 물고기 정도는 스스로 조달할 수 있었겠지 하며 식탁 앞에서 합리화를 한다. 문제는 나다.

집 밖에서 밥을 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다시 내 밥상에는 고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되도록 고기 없이 먹으려고 시도하던 것이 점점 무뎌지고 이제는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리기 전에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주기적으로 꺼내 읽는 <아무튼, 비건>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https://m.blog.naver.com/mindyland/222657074411

책을 읽으며 완벽한 비건 1명보다 비건 친화적인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더 이롭다는 말에서 새삼 위로를 받았다. 아직은 완전히 내 식탁에서 고기를 몰아내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나는 여러 번 마음을 먹고 해이해지고 다시 마음을 먹는 일을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고기가 아닌 쪽을 선택하려고 애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귤은 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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