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10년처럼 느껴지는 기적
여명이는 아직 크게 아파본 적은 없다. 다만, 여명이가 집고양이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할 수 있을 중성화 수술은 6개월쯤 겪었다. 초보 보호자였던 나는 수술이 끝나면 끝인 줄 알았다. 그게 큰 오해라는 건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깨달았다. 10분 남짓이었을 중성화 수술은 수술 그 자체보다 전과 후가 훨씬 고된 과정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원치 않았던 수술로 불편을 겪었을 여명이가 제일 고통스러웠겠지만, 집사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수술 후 실밥을 풀 때까지의 10일 동안이 단언컨대 우리 둘에게 가장 빡센 시간이었다.
지금보다 더 아기 시절에 털이 푸석푸석하던 여명이가 윤기 좔좔 흐르는 털을 가지게 된 것에 내 역할도 적잖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모든 건 여명이가 그루밍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있는 집인데도 냄새가 별로 안나는 것도 내가 환기를 잘하고 여명이 화장실을 잘 치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명이가 모래로 변을 잘 묻었고, 그루밍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명이한테 굉장히 많은 시간을 쏟으며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었다. 그동안 여명이는 진짜 혼자서 잘 알아서 하는 고양이였다. 이걸 여명이에게 넥카라를 씌운 뒤에 알았다.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건 화장실이었다. 넥카라 때문에 바로 앞이 안 보이게 된 여명이는 화장실에서 평소처럼 변을 묻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밖으로 나와서 보면 하나도 안 묻혀있는 자기 변을 보고 놀라서 다시 들어가서 다시 엄한 데 모래를 쌓아 올리는 과정을 하루에도 수 차례 반복했다. 얼마나 힘차게 모래를 차는지 화장실 밖으로 모래가 다 넘어왔다. 여명이가 화장실만 한 번 갔다 하면 내 작은 방이 와이키키 해변 같아졌다. 넥카라로 스트레스받는 애한테 청소기 스트레스까지 더하고 싶지는 않아서 청소기 돌리는 횟수도 하루에 두 번으로 제한했더니, 나는 하루 종일 빗자루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청소는 차라리 쉬웠다. 화장실 다녀오면 환부 소독을 해주는 게 좋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서, 여명이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소독약을 들고 대기했다.
지금 생각하니 여명이는 넥카라 때문에도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유별난 임보 누나 때문에 더 스트레스였을 것 같다. 닷새쯤 지나고 나서는 내가 바로 지척에 있을 때는 넥카라를 아주 잠시 풀어주기도 했다. 앞발이나 목 주변이라도 그루밍을 잠깐씩 할 수 있도록 풀어줬다가, 뒷다리 쪽으로 시선만 줘도 다시 넥카라를 씌웠다. 여명이도 그랬겠지만 나에게도 수술 후 회복하는 그 열흘이 10년처럼 길었다. 이러나저러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여명이가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느낄 넥카라를 찾아주려고 노력했다. 여명이는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세 종류의 넥카라를 착용했었다.
1. 플라스틱 넥카라
장점: 절대 그루밍을 할 수 없고, 벗을 수도 없다.
단점: 가장 불편하다.
장점이 굉장히 확고한 넥카라지만 단점이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돌아온 첫날 여기저기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아서 이건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2. 행주 넥카라
장점: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가볍다.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
단점: 화장실에 다녀오면 쉽게 더러워지고, 목주변이 잘 늘어난다. 자주 갈아줘야 한다.
여명이가 활동하기에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았던 넥카라는 바로 행주 넥카라였다. 저걸 씌워준 순간부터 여명이는 치타처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넥카라를 끼고는 잠투정도 심했는데, 행주를 쓰고 나서부터는 잠도 아주 잘 잤다. 다만, 화장실에서 자칫 뭔가(!)를 묻혀서 나올 수도 있고, 물 먹을 때 쉽게 젖었다. 그리고 목 주변이 생각보다 잘 늘어나는데, 많이 늘어나면 쉽게 벗을 수 있어서 자주 새 걸로 갈아줘야 했다. 그리고 행주 부분을 그루밍할 때마다 여명이가 먼지를 먹는 느낌이었다.
3. 도넛 넥카라
장점: 도넛 부분을 베고 잘 정도로 편안하다. 목 주변에 맞게 크기 조절을 할 수 있다.
단점: (개인적으로) 목에 맞게 줄을 조이기가 어렵다. 벗을 수도 있다. 가격이 비교적 비싸다.
사실 행주 넥카라를 하기 전에 도넛 넥카라를 했으면 여명이가 더 쉽게 적응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행주의 맛을 알아버려서 여명이는 도넛에 쉽게 적응을 못했다. 씌워 놓으면 그걸 베고 잘 정도로 편안해하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흔들면서 벗기도 했다. 그래서 도넛은 내가 깨어있을 때만 가끔 착용했다. 한밤 중에 도넛 넥카라를 벗고 나를 내려다보던 여명이 눈빛 잊지모대... 정말로 식겁했다. 그 밤중에 벌떡 일어나서 수술 부위 확인하고, 행주를 급히 잘라서 넥카라를 만들어주고 나서 다시 잤었다.
세 가지 넥카라를 모두 사용해본 결과, 행주 넥카라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여명이가 활동하는 모습을 봐도 행주가 가장 편해 보였다. 도넛 넥카라도 처음부터 사용해서 적응을 했으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행주에 적응을 한 뒤라서 여명이가 좀 불편해하는 느낌이었다. 싸지도 않은데 괜히 샀다고 후회했을 정도로 여명이는 행주 넥카라 의존도가 높았다. 도넛 넥카라를 사용할 거였으면 수술하기 전에 미리 주문을 해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때는 하루하루 지옥훈련 같더니 다 지나고 나니 기억이 미화되는지, 다양한 색깔의 행주를 찰떡같이 소화해내던 톤 파괴자 여명이의 귀여움만 떠오른다. 수술도 씩씩하게 잘 받고, 건강하게 잘 회복해줘서 빈땅콩으로 우당탕탕 잘 지내주는 그저 여명이한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