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네 회사는 왜 그럴까
누나는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부터 깜깜할 때 나갔다가 깜깜할 때 들어온다. 다 죽어가는 얼굴로 돈 벌어올게 하고 나가는 걸 보니까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나갈 때 그냥 나가면 될 텐데 굳이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누나가 돈 많은 한량이면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되고 얼마나 좋을까, 번호 여섯 개만 찍어줘 봐라 등등 한참 넋두리를 하다가 나간다. 누나 나가면 자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저렇게 구구절절할 때마다 난감하다. 그냥 좀 빨리 나가. 내가 좀 시큰둥하면 누나는 집에서 하루 종일 노는 놈이 배웅도 제대로 안한다고 호통을 친다. 그래서 나가는 누나한테 가끔 애교를 부려주기도 하는데 그러면 또 이렇게 질척거리면 누나가 출근을 어떻게 하냐고 우는 소리를 한다. 정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누나가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누나네 회사에서도 드디어 누나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오지 말라고 한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누나가 회사를 다녀야 간식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준댔는데. 그렇게 마음을 졸이면서 하루를 보냈더니 다음 날은 또 회사에 간다고 나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했는데, 누나는 그 이후로도 몇 번 그렇게 회사에 갔다가 안 갔다가 했다. 누나는 이제 가끔 집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재...뭐라고 했는데 아무튼 그렇다. 누나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지? 라며 잇몸 만개하고 웃는 누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누나가 회사 다시 갔으면 좋겠다.
누나는 집에서 일하는 날엔 밝아지고 나서야 일어난다. 회사 갈 때는 나랑 비슷하게 깜깜할 때 일찍 일어나서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사냥놀이도 해주는데, 집에서 일하면 한참 늦게 일어난다. 나같이 점잖은 고양이가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러야 일어난다. 그래놓고 알람도 울리기 전인데 왜 이렇게 야단이냐고 짜증을 낸다. 누나는 화가 많다. 부스스 일어나서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청소까지는 하는데, 사냥놀이는 이따 점심시간에 하자고 미룬다. 누나가 집에 있으니까 노는 거 같겠지만 지금은 근무시간이라면서 사냥놀이는 점심시간으로 미루고 안해준다. 치사하게 누나는 사냥놀이 해줄 시간은 없댔으면서 자기 마실 커피 내린다고 한참 동안 부스럭거린다. 누나네 회사에서 이걸 알아야 되는데.
누나 일하는 동안은 옆에서 너도 조용히 자라면서 누나 책상 옆에 담요도 깔아줬다. 바닥은 따끈따끈하고 누나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타닥타닥 나서 잠깐 엎드려 있으면 잠이 온다. 자라고 했으면서 막상 내가 잠들면 누나는 자는 내 사진을 찍는다고 찰칵거리고, 귀엽다고 쓰다듬고, 내가 귀여워서 누나 일 못한다고 징징거리고, 누나 좋냐고 물어보고 엄청 귀찮게 군다. 자라며...나 좀 자라며!!!!! 너무 귀찮게 굴길래 누나 좀 놀아주고 다시 자야겠다 싶어서 누나 책상에 폴짝 올라가면, 이번에는 내가 방해해서 일을 못하겠다고 짜증을 낸다. 누나는 화가 많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다 보면 어느덧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점심시간이다. 집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고, 누나는 요리하는 내내 창문을 열어놓는다. 손은 어찌나 느린지 자기 것만 한 그릇 만드는데도 한참 걸린다. 그동안 나는 추워서 담요에 들어가 있는데, 담요 속은 따뜻하니까 또 잠이 온다. 갑자기 조용한 것 같아서 일어나 보면 이미 누나 점심시간은 끝나있다. 점심시간에 사냥놀이하려고 했는데, 내가 자서 못했다고 누나는 내 탓을 한다. 그러면서 이제 너도 그만큼 자랐으면 혼자 놀 줄도 알아야 된다고 잔소리까지 한다. 누나가 집에 있으니까 30초에 한 번씩 화가 난다.
오후 내내 오전처럼 누나는 내가 자면 치근덕 거리고, 일어나면 일 방해한다고 짜증을 낸다. 일은 도대체 언제 하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니까 맨날 일하고 와서 피곤하다고 한 것도 다 뻥인 것 같다. 회사 가서도 누나가 저렇게 진상일까 봐 걱정이 된다. 해가 지면 누나가 컴퓨터를 끄면서 와, 퇴근이다! 이제 놀아도 돼 여명아! 하는데, 좀 기가 찬다. 누나 오후 내내 커피 마시고, 빵 먹고, 과자 먹고 노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누나가 퇴근하면 밀린 사냥놀이도 해주고, 간식도 주고 해서 나는 화가 좀 풀린다. 온종일 앉아있어서 그런지 누나는 활력이 평소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다. 낚싯대 흔드는 스킬이 출근하는 날보다 못하다. 왠지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나는 더 놀아달라고 점잖게 요구하는데, 그러면 누나는 또 하루 종일 놀아놓고 뭘 그렇게 오래 노냐고 짜증을 낸다. 누나는 화가 많다. 저럴 때면 누나도 딱히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좀 억울해진다.
누나는 앞으로도 가끔 집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누나가 회사 갔을 때는 집에 아무도 없어서 좀 쓸쓸한 것도 같았는데, 쓸쓸한 게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집에 하루 종일 누가 있으니까 내 생활 리듬도 다 깨지고 좀 별로다. 그리고 누나가 출근하는 날은 돌아와서 혼자 오래 둔 게 미안하다고 더 많이 안아주고, 사냥놀이도 오래 해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준다. 집에 있으니까 생색만 엄청 내고 해주는 건 없고 아주 별로다. 집에서 일을 며칠 해보더니 누나가 자기는 앞으로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제발 꿈도 꾸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좀 떨어져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누나. 나는 누나가 앞으로도 회사에 열심히 다녔으면 좋겠다. 집사는 자고로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게 최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