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독립해서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에서 잤던 밤이 아직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20대 중반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외국에서의 첫 밤이었다. 너무나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날이 굉장히 의미 있는 날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불을 넣어놓은 짐만 하루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 첫날은 방 안에서 노숙 아닌 노숙 상태로 잤기 때문이다. 북쪽 지방이라 봄인데도 한기가 살짝 도는 방 안에서 나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늦게까지 잠을 못 이뤘다. 여명이가 처음 내 방에 온 날 오랜만에 저 기분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물을 챱챱 마시는 여명이 소리를 들으면서 그날도 잠을 설쳤다. 처음 혼자 살게 된 날도, 혼자 사는 공간에 누가 처음 들어온 날도 걱정과 설렘이 한가득이었다.
여명이라고 혼자 사는 직장인과 함께 살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만, 나도 내 공간에 다른 누군가를 들일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내 집에 살아있는 건 나 하나면 좋겠다는 게 그동안 내 입버릇이었고,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뒷목을 잡으셨다. 한국에 돌아와서 혼자 살면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만춘이를 만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만춘이의 아들 여명이가 내 방에 있었다. 잠깐 내 방에 머물 예정이었던 여명이는 이제 내 방의 주인이 되었다. 여명이와 같이 살 결심을 망설이게 했던 제일 큰 고민은 내가 1인 가구 직장인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낯을 가리던 초반에는 오히려 괜찮았다. 서로 정이 많이 든 요즘, 올 게 왔다는 느낌이다. 내가 외출하면 섭섭해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청난 기세로 반긴다.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명이는 내가 출근할 때와 다른 일로 외출할 때를 구분하는 것 같다. 출근할 때는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나를 보고 있는데, 그냥 외출할 때는 숨숨집에 들어가서 나를 거들떠도 안 본다. 어떤 반응이든 괜히 나를 미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회사 갈 때는 좀 덜하다. 10시간이 넘도록 혼자 두는 건 미안하지만 우리 둘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자주는 아니지만 놀러 나갈 땐 나도 여명이 눈치를 좀 본다. 삐진 여명이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친구도 가족도 못 만나냐며 발끈하다가도, 여명이한테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또 조금 미안해진다. 정작 여명이는 내가 외출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1인 가구, 심지어 1묘를 책임져야 하는 1인 가구라서 더더욱 일을 그만둘 수는 없기에 여명이는 앞으로도 하루의 절반 가까이 혼자 집을 지켜야 한다.
여명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나는 집순이다. 혼자 살 때도 나는 집에 콕 들어박혀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했다. 가끔 날이 너무 좋거나, 꼭 가고 싶은 어딘가가 있는 날은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주말에는 어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집에 있었다. 집순이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주말에 온전히 집에 있기 위해 평일로 모든 약속을 몰아넣는 편이었다. 그런데 여명이가 오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다. 내가 밖에서 밥벌이를 하는 10시간 혹은 그 이상 혼자 있을 여명이를 생각하면 저녁에 약속을 잡을 수가 없었다. 퇴근 후에 할 법한 일들을 주말에 하기 시작했고, 거의 항상 깨끗하게 비어있던 달력 주말 칸에는 뭔가가 빼곡히 적혔다. 그리고 밖에 있는 동안 나는 작은 방에 혼자 있는 여명이가 뭘 하고 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종종 궁금해한다.
매일 더 오랜 시간을 여명이와 함께 보낼 수 있다면, 더 넓은 집에 살게 된다면 여명이에게 덜 미안할 수 있을까. 비좁은 방에 여명이랑 나란히 누워서 볕을 쬐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미래에 지금보다 나이를 먹은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을 여명이와 지금보다 더 넓은 집에 살게 될까. 그때 나는 어린 여명이와 살았던 좁은 단칸방을 그리워하게 될까. 한참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자주 미안하고 가끔 화가 나고 거의 항상 즐거운 지금 생활을 더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나랑 항상 몸 어딘가를 붙이고 누워있는 여명이가 오래도록 내 옆에 있기를 바라면서.